철저히 내 조대로 사는 나도 사람이기에 금년 12월 달력마지막장을 보며 오 헨리의 마지막 잎 새를 음미하다. 유배지 바 닷 가의 헛간 옆 소나무 달랑 세 그루! 세한도그림이 가슴시리다. 하나둘 나이 들어 곁을 떠나는 어르신들 어릴 적 소낙비 개인 후 무지개를 쫒던 친구들이 하나 둘 죽어선 그립고 애달다.

 눈을 감거나 벼 개 모서리에 머리만 박아도 닭처럼 졸음이 오는 나이지만 오늘따라 달랑 한 장남은 달력에 눈이 가선 시린 가슴 적막한 고독에 잠을 설친 다. 그런 절간 같은 큰집에 홀로 살 수 있는 비결은 오직 잠이다. 불면증이 있으면 나는 거기서 살 수가 없다. 거듭 말해 나는 식충이처럼 눈만 감으면 스르르 잠들이 들기에 세상사 다 그렇게 살기 마련인가 한다. 나는 집에 TV가 세대인 것을 한 대는 친구를 주고, 한 대는 깨버리고, 한 대는 코드를 뽑아 아예 보지를 않는다. 이유는 광고가 너무 길어서이다.

 나는 상처를 많이 받은 사람이이지만 잠자느라 잠이 나를 살렸다. 50 여 년 전 TV연속극 ‘잠’ 이 있었다. 잘 자는 주인공별호가 ‘잠’ 이었다. 그 정도는 아닐 찌라도 비슷하게 잠이 많아 고민 할 시간조차 없어서 죽지 않고 살 은 것 같다. 마음의 상처가 자연치유도 된다지만, 어쩌면 마음이 곪고, 어쩌면 잠이 내 마음에 큰 상처의 흉터를 아물게 했지 않았을까 새삼 회상해 본다. 

 주변사람의 생각 없이 툭 던진 뼈대 있는 말 한마디 「저 사람 안 죽고 사는 게 용하네! 그러게 아직 안 죽었네,” 하며 대 놓고 흉을 보던 그 막말의상처가 아물기 까진 족히 1세대 즉 30년이 훌쩍 지나쳤다. 사람들은 말한다. 서로 간 느껴지는 거리가 싫다고 하지만, 사람에게는 저마다 추구할 가치가 있기에, 그것을 위해 곁눈질 하지 않는 ‘삶’이 보약이 아닐까? 

 

바닷가에 매어둔 

작은 고깃배

날마다 출렁 거린다

풍랑에 뒤집어 질 때도 있다

머 얼 리 노 저어 나가서 

헤밍웨이와 바다의 노인이 되어서

중얼거려대고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 되고 

사노라면

많은 기쁨이 있다고

 

우리는 때때로 스스로 상처를 입기도 한다. 스스로를 향해 너는 이렇다, 저렇다, 판단의 잣대를 들이댄다. 그럴 때 마다 얻는 것은 상처뿐이다.

 

사랑하는 사람아 

우리에게 겨울이 없다면 

무엇으로 따뜻한 포옹이 가능하겠느냐

무엇으로 우리서로 깊어질 수 있겠느냐 

 

이 추운 겨울이 없다면 

꽃은 무엇으로 피어나고 

무슨 기운으로 향기를 낼 수 있겠느냐 

나 언 둔 뜨고 그대를 기다릴 수 있겠느냐 

눈보라 치는 겨울밤이 없으면 

추워 떠는 자의 시린 마음을 무엇으로 헤이라고

내 언 몸을 녹이는 몇 평의 따뜻한 방을 고마워하고

자기를 벗어버린 희망하나 키울 수 있겠느냐 

아 아 겨울이 온다

추운 겨울이 온다

 

박노해 시인의 「겨울사랑」 시다. 

“겨울이 없다면 무엇으로 따뜻한 포옹이 있겠느냐” 라는 시인의 말은 아무리 매서운 추위 속에 서도 우리는 서로의 체온과 마음을 나눌 수 있다는 사랑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어떤 순간에도 곁에 남아 있는 작은 온기와 사랑의 소중함을 절실하게 느낄 수 있는 희망의 시간이기도 한 것이 아닐까? 죽마고우라! 지게 작대기 말을 타던 한동네 친구가 서울에 문병간 사이 세상을 등졌다. 고인이 된 그 친구의 명복을 빌며 이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