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곯던 시절을 기억하며…
가조면 중마 2구에서 평생 농부의 삶을 살아온 박주석(84) 씨가 마을과 문중을 위한 큰 결단으로 지역사회에 깊은 감동을 전하고 있다.

박 씨는 최근 아들들의 동의를 얻어 가조면 중마 2구 마을회관에 논 6마지기를 기부하기로 결정했으며, 이어 가북 옥산 박씨 소종회에 조상답 915평과 주택 150평, 대종회에 논 약 1,100평을 기부하겠다는 뜻을 밝혀 ‘현대에 보기 드문 나눔의 실천’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박 씨의 삶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 가북 동촌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난 그는 1966년, 스물두 살의 나이에 다리가 불편한 아버지를 모시고 험한 산골 농사를 이어가기 어려워 가조면 중마 2구로 이주했다. 당시 가조는 구르마로 농사를 지을 수 있을 만큼 여건이 나았지만, 분가 후 받은 논 7마지기로 생계를 꾸리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이를 악물고 농사를 지어 10년 만에 논 6마지기를 마련했지만, 논을 담보로 시작한 돼지 장사가 동업자의 야반도주로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박 씨는 “그날 이후 한순간에 알거지가 됐다”고 회상한다.

이후 부산으로 떠난 그는 친척에게 빌린 70만 원으로 전세방을 얻어 노가다 현장에서 점심도 거른 채 낙동강 둑 전주 제거 작업을 하며 하루하루를 버텼다.고향 지인이 문현동 도시 고속도로 현장을 소개 해줘서   2년 넘게 주·야간 일을 이어간 끝에, 아내 김삼순(82) 씨가 “이제 따뜻한 밥을 먹어도 될 만큼 살림이 나아졌다”며 도시락을 싸주던 날을 그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고 말했다. 1984년, 다섯 번째 이사 끝에 1,300만 원으로 집을 마련했고, 담보로 잃었던 가조의 논 6마지기를 다시 되찾았다. 박 씨는 “그날 많이 울었고, 다시는 논을 잃지 않겠다고 스스로 다짐했다”고 말했다. 2007년 6월 6일, 오랜 부산 생활을 접고 다시 가조 중마 2구로 돌아온 그는 세 아들이 넉넉한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모습을 가장 큰 보람으로 꼽는다. 또한 평생 곁에서 묵묵히 헌신해 온 아내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박 씨는 “배를 곯아본 사람은 나눔의 소중함을 안다”며 “내가 가진 것이 많아서가 아니라, 함께 살아온 이웃과 조상, 마을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었다”고 담담히 말했다.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몸소 실천하며 세상에 따뜻한 울림을 전하는 박주석 어르신의 나눔은, 각박한 시대 속에서 우리 사회가 잊지 말아야 할 공동체 정신의 귀한 본보기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