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단고기』 진서 맞다
오환건국吾桓建國이 최고最古라. 삼성기 上
인류문화원형인 신교의 삼신문화를 이해하고 수긍한다면, 문화사에서 『환단고기』가 가지는 독보적 가치를 맛 볼수 있을 것이다. 『환단고기』가 탄생하고 그 내용이 오늘의 우리들에게 전해지기 까지 천사백 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환단고기』를 구성하는 다섯가지 사서가 집필되는데 천년이 걸렸고, 『환단고기』라는 이름의 역사서가 집필되는데 다시 사백년의 세월이 흘렀다. 환단고기는 수 십 세기에 걸친 여러 선인들의 공덕과 혈성血誠이 빚어낸 위대한 문화유산인 것이다.
2025년 12월12일 이재명 대통령이 교육부 산하기관의업무보를 받을 적에 동북아역사재단이사장(박지향) 에게 업무점검을 하면서 “환빠, 환단고기”를 발언한 것이 정쟁 화되었다.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역사왜곡에 대응하기 위해 출범한 동북아 역사재단이 고대사를 비롯한 역사연구과과정에서 『환단고기』 의 문헌적 가치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묻는 과정이었다.
그 발언이후 일부야당 정치인들이 대통령이 마치 금기시되는 ‘환단고기’를 발언한 것처럼 공격하기 시작 했다. 대부분 언론에서는 물 만난 고기마냥 주류역사학자들의 입장만 대변해 부정적 보도를 쏟아냈다. 이런 언론 보도 행태에 힘입은 주류역사학계는 ‘사이비 역사학’ 유사역사학 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환단고기』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학자들과 시민들을 매도하기 시작했다.
대담 자들은 서두에서 환빠의 정의 무터 내리며 시작했다. 그동안 주류사학계는 자신들의 학설과 배치되는 주장을 하는 학자와 시민들을 ‘환빠’ 혹은 ‘사이비 학자’ 라는 딱지를 붙여왔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통해 드러난 실체는 사뭇 다르다. 오히려 시민들은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식민사관에는 침묵하면서, 왜 고대사를 비롯해 우리의 올바른 역사를 찾으려는 노력에는 이토록 가혹한 가“ 라고 묻고 있었다. 학문적 토론을 ’프례임‘으로 가두는 행위는 소통의 단절을 야기하고, 국익과 정체성을 훼손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ㅇ라고 지적한 것이다.
그러면서 『환단고기』 위서론 주장에 대해 하나하나 반박하는 시간을 가졌다. 환단고기의 1979년 이유립 창작설과 근대용어사용을 근거로 20세기에 만들어진 책이란 주장, 그리고 환국을 비롯한 상고사의 잘못된 이해를 바탕으로 주장하는 위서로에 대해 논리 근거를 바탕으로 살펴보는 시간이 있었다.
1980년데 이후 홍산문화를 발굴하던 중국고대사학계에 큰 충격으로 중국인들이 홍산문화에 주목하는 이유는 2025년 12월 12 한국대통령이 ‘환빠’ 발언으로 『환단고기』 지위 논쟁이 다시 불붙었다. 그런데 동북아에서 가장 오래된 원형제단이 ‘오랑케의 땅’, ‘야만의 땅’이라 부르던 만리장성 밖에서 발견되었으니, 중국인들은 그 실체를 알지 못해서 한때 ‘신비의 왕국’ 이라 불렀다.
그 뒤에 홍산문화를 자신들의 문명의 기원으로 삼고, 자신들 시조를 홍산인으로 삼아서 남신상을 ‘중화조신中華祖神’이라 부르고, 우하량 여신묘에서 발굴된 여신상을 ‘중화모조中華母祖’라 칭했다.
『환단고기』는 이렇게 전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9,200년 전 시작된 환국桓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삼신三神의 광명을 온몸에 받아서 빛의 인간으로 거듭난 ‘환’들이 세운 빛의 나라이며, 이들 모든 환 구환족九桓族을 다스리는 사람을 ‘인仁’이라 하여서 12환국의 통치자를 ‘환인’이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