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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100년 전 거창의 3.1운동 '
[2019-03-20]

 

1919년 3.1운동의 전개 -
일본은 한일합방을 전후하여 침략에 항거하는 의병전쟁과 애국계몽운동을 무자비하게 탄압하고 강력한 무단정치를 펴는 한편, 민족고유문화의 말살, 경제적 침탈의 강화로 전체 조선민족의 생존에 심각한 위협을 가했다. 민족자본가 계급은 민족자본의 성장을 억제함으로 실시된 회사령(會社令1910)으로 큰 타격을 받았으며, 농민의 경우 토지조사사업(1910~18)으로 조상전래의 토지를 빼앗기고 빈농․소작농으로 전락, 극히 일부 지주층을 제외하고는 절박한 상황에 몰리게 되었다. 또한 농지를 빼앗기고 도시로 흘러들어 자유노동자가 된 사람들은 일본인 노동자에 비해 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저임과 장시간 노동, 비인간적 대우, 민족차별 등으로 극악한 환경 속에서 살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처럼 식민통치 10년 동안 자본가․농민․노동자 등 모든 사회구성 계층이 식민통치의 피해를 직접적․구체적으로 입음으로써 그들의 정치․사회의식이 급격히 높아져 갔고, 더욱이 미국대통령 윌슨이 전후처리를 위해 <14개조평화원칙>을 발표, 민족자결주의를 제창함에 따라 이 기회를 이용한 지식인․종교인들이 불길을 댕기자 항일민족운동은 삽시간에 거족적인 운동으로 번져나가게 되었다.


손병희를 대표로 하여, 천도교․기독교․불교의 지도적 인사로 구성된 민족대표 33인은 마침 고종황제의 인산 因山(국장)이 3월 3이로 결정되자 많은 사람들이 서울에 모일 것을 예측, 3월 1일 정오를 기해 파고다공원에 모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후 인쇄물을 뿌리고 시위운동을 펴기로 했다. 또 각 지방에도 미리 조직을 짜고 독립선언서와 함께 운동의 방법․날짜 등을 전달해두었다. 독립선언서와 일본정부에 대한 통고문, 미국대통령․파리 강화회의 대표들에게 보낼 의견서는 최남선이 기초하고, 비용과 인쇄는 천도교 측이 맡아, 2월27일 밤 보성인쇄소에서 2만 1천장을 인쇄, 은밀히 전국 주요도시에 배포했다. 손병희 이하 33명의 민족대표는 3월 1일 오후 2시 정각 인사동의 태화관(泰和館)에 모여 한용운이 독립선언서의 낭독을 끝내자 만세삼창을 부른 후 경찰에 통고하여 자진 체포당했다. 한편, 파고다 공원에는 5천여명의 학생들이 모인 가운데 정재용(鄭在鎔)이 팔각정에 올라가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를 부른 후 시위에 나섰다. 이들의 시위행렬에 수만의 시민들이 가담함으로써 서울시내는 흥분된 군중과 만세소리로 들끓게 되고, 만세운동은 삽시에 전국적으로 번져나갔다

거창의 3.1운동 -
<가북, 가조의 만세운동>
전국적인 3.1운동의 소식을 접한 가북 용산의 김병직과 가조 동례리 어병준은 의기에 불타 3.20 장기리 장날을 택하여 독립만세를 부르기로 준비하였다. 치밀한 준비 끝에 3.20일 정오 장기리 만학정에 4-5백명의 군중이 모여 2사람을 선두로 자주국, 자주민임을 선포하고 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위하였다. 가북 용산 주재소 일제 헌병대가 시위대를 막는 사이 2사람은 시위대열에서 빠져 나와 용산 헌병주재소로 달려갔고 주재소는 비어 있었다. 주재소로 들어간 김병직과 어병준은 주재소의 기물과 문서를 파괴하고 헌병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60여명의 운동원을 체포한 헌병대가 주재소로 돌아오자 2사람은 60여명과 합세하여 헌병들과 난투극을 벌였다. 그러나 총칼 앞에 포박 당할 수밖에 없는 농민들은 거창 주재 일본헌병대로 압송되었다.

이 소식을 접한 가조, 가북 애국지사들은 가조면 석강리 정자에 모여 비밀리에 대책을 세웠다. 3월 22일 거창 장날 거사를 결정짓고 대표 5명을 뽑았다. 애국민중들은 이 사실을 비밀리 마을마다 알려 나갔다. 한편 석강리 정자아래에서는 횃불을 밝히고 밤을 샜다. 이 횃불시위는 조선후기 농민항쟁 때 자주 사용해 왔었다. 그 때 석강리에서 결의한 내용을 보면

- 대표자를 선정하고 대표자중 5명을 다시 대표자로 선정하여 3월 22일 거 창 장날을 기해 독립만세를 부르며 일본 헌병대를 습격한다.
- 오늘(3월 21일)야간을 이용하여 가북, 가조 마을마다 이 사실을 주지 시키 고 일제히 동원시킨다.
- 3월 22일 오전 11시까지 장기리 만학정 정자나무 아래로 집결.
- 면민으로 이 운동에 불참하면 엄중 문책한다라고 되어 있다.

그 당시 대표자를 보면 다음과 같다.
대표자 - 오문현, 어명철, 김 호, 신병희, 이병홍, 최영순, 김채환, 김용주,
김범우, 김병석, 어병석, 김병주, 문규선, 김 숙 (14명)
주도면밀하게 계획을 했지만 정보가 누설되어 22일 아침 거창 헌병대 분대가 가조면 장기리로 달려와 주동인물 오문현, 김 호, 어명철, 최영순, 김채환 등을 끌고 가 취조하였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가북, 가조 3,000여명의 민중들은 오후 2시 30분경 각자 몽둥이를 하나씩 들고 독립만세 깃발을 들고 가조 장기리 만학정 앞에 모여 독립만세를 큰 소리로 외쳤다. 이 들은 취조중인 주동인물을 구출하여 행렬을 이룬 후 거창읍으로 향했다.

시위행렬이 살피재를 넘어 둔마리에 도착했을 때 거창 헌병분대와 용산 주재 헌병이 합세하여 진로를 차단시키고 총을 쏘며 위협을 하며 해산을 시켰으나 군중은 쉽사리 물러나지 않고 돌진하였다. 이 때 포진한 일제 헌병들이 총격을 가하여 희생자가 속출하였다. 가북, 가조지역 독립만세 시위 때 희생된 순국자가 5명, 부상자 4명, 수형 8명이다. 나머지 100여명은 고문과 태형을 받았다.
가북, 가조 3.1운동을 통하여 국가보상이 10명(김 호선생 2018년 대통령표창)이며 살피재에는 그 날 희생된 영령을 위로하는 기념비가 1978년 오림회가 시발이 되어 만들어 졌다.

한대수 - 3.1운동백주년 거창평화축전 실행위원장

<참고문헌>
거창군사 <거창군 1997>
한국사에 비추어 본 거창의 역사 <신용균 역사공간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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