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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사귄 친구보다 좋은 거울은 없다. - 이탈리아 속담 -

 

 

'[칼럼] 천재시인 백석의 情人'
[2015-03-26]

 

나는 시인 백석과 1936년 가을 함흥에서 만났다. 그의 나이 26세 내가22세였다. 우연한 자리 요정(料亭)에서 그는 첫 대면인 나를 대뜸 자기 옆에 와서 앉으라고 권했다. 자리를 파하고 헤어질 무렵 그는 “오늘부터 당신은 이제 내마누라요”하곤 단정적으로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의 의식은 몽롱해지면서 바닥모를 심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 했다. 그것이 내 가슴속에서 아직도 지워지지 않고 있는 애틋한 슬픔의 시작이었다. -김영한《내 가슴속에 지워지지 않는 이름 백석》중에서-
그 여인은 가정 형편상 어렵게 자란 여인이었다. 그는 1932년 요정에 들어가 기생이 되어 여창가곡, 궁중무 등을 배워 가무의 명인으로 성장한다. 문학적 소양도 뛰어나 <삼천리 문학에>에 수필을 발표했으며 특출한 재능을 알아본 해관 신윤극 선생의 도움으로 1935년 일본유학길에 오른다. 그녀는 도쿄에서 유학중 신윤극 선생이 아마 독립운동에 연루 함흥교도소에 투옥되었다는 소식을 듣곤 한달음에 현해탄을 건너와 달려갔지만 만날 수가 없었다.
유명한 기생이 되면 법조계 인맥을 통해 스승을 면회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그길로 함양 요정에 들어간다. 그 곳에서 함흥영생여고 영어교사인 잘생긴 청년 시인 백석을 만나게 된다. 첫눈에 반한 백석은 그녀에게 “오늘부터 당신은 영원한 나의 마누라요, 죽기 전에 우리사이에 이별은 없어요” 라며 자야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자야를 처음만난 그날 이후 백석은 자야를 중심으로 한 삶을 영위하게 된다.
허나 부모가 기생과 사귀는 백석을 그냥 놔 둘리 없었고 그는 부모의 뜻을 거역할 수 없어 결혼식을 치르지만 그날로 자야에게 도망쳐온다. 자야는 백석 몰래 함흥을 떠나지만 백석은 또다시 자야를 찾아 나섰고 서울에서 자야를 다시 만난 백석은 영어선생도 헌신짝처럼 내 팽개치곤 자야에게 정착하게 된다. 이때부터 3년 동안 둘은 부부처럼 살았고 백석은 여러 편의 아름다운 서정시를 쓴다. ‘나와 나타샤와 한 당나귀’ 와 ‘바다’ 등은 자야를 떠올리며 쓴 시다. 그러나 1939년 백석은 또다시 부모에 의해 강제결혼하게 되고 또다시 자야에게 돌아온다.
부모에 대한 효심과 자야에 대한 사랑사이 번민으로 괴로웠던 백석은 만주로 가서 시 100편을 쓴다며 함께 도피하자고 말한다. 하지만 백석의 인생에 걸림돌이 되기 싫었던 자야는 거절한다. 백석은 혼자 만주로 건너가고 그것이 둘의 마지막 만남이 되어버렸다. “당시 백석의 나이 스물여덟 자야나이 스물넷 그 후 국토 분단의 아픔은 백석은 북녘최고의 시인으로 이름이 알려졌고, 자야는 남한최고의 요정대원각 주인으로 둘의 사이를 갈라놓았다. ‘백석’과 3년간의 사랑을 잊지 못한 자야는 60년을 기생으로 홀로 수절하다 시피 살았다.
1988년엔 회고록 <백석 내 가슴에 지워지지 않는 이름>과 1995년에는 에세이 《내 사랑 백석》을 출간하였다. 1972년에는 창작과비평사에 2억 원의 출연금으로 “백석문학상”을 제정했다. 그 무렵 時價 1,000억 원에 달하는 대원각을 ‘법정스님을 설득해 기증했다. 처음엔 대법사란 이름을 지었으나 1977년에는 자야 김영한의 법명인 길상화(吉祥花)를 따선 길상사로 바꾸게 된다. 이젠 백석과 자야의 뜻에 따라 길상사를 지은 법정스님도 길상사에 도움을 주었던 김수환 추기경도 모두 유명을 달리했다. “공수래공수거” 란 의미를 음미해 본즉 子夜나 白石의 슬픈 이별이 행복으로 승화 되었다면 필자의 잔인한 생각일까?
그녀가 사랑한 남자는 천재詩人 白石 이고, 그가 사랑했던 여자는 기생 진향 金英韓이다. 백석은 그녀를 子夜라고 불렀었지만, 그 사람 어디가 어떤 면이 그렇게 좋았을까?
“1,000억 원은 그 사람의 詩 한 줄만도 못하다. 면서 다시태어나면 시를 쓰겠단 子夜! 사랑을 간직 하는 데는 시밖에 없다”는 말을 남겼으니 작가를 어리둥절케 했단다. -이생진 《그 사람을 사랑한 이유》중에서


-붓가는대로 임부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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