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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서울 수락산 춘향제 참례기'
[2015-04-09]

 

지난 4월5일은 거창愼氏14세손 전라도 관찰사 愼幾公의 춘향제를 서울 수락산 장수재서 올리기에 필자도 거창 창충사會長으로서 참례를 하니 전국서 100여 참배객들이 모여 희색이 만면했다.祭禮란 우리민족 고유의 미풍양속으로 祭(肉,又,神)자란 고기(月=肉)를 들곤 神께 바치며 절하곤 또(又)절하며 禮(神,曲,豆)자란 神께 떡을(曲)썰어 제기(豆)그릇에 담아 올린다는 뜻으로 조상에 대한 禮이다. 이날 제관으론 愼석봉씨가, 홀기는 愼석범씨가 맡으시고 초헌관,아헌관,종헌관은 각 지역별로 분배를 하니 종헌관은 거창人 제게 맡겨져 항렬이 낮아 퍽 송구스러웠다. 봉작께서 잔을 드리우니 제가 술을 따르곤 향불에 씌운 후 모사그릇에 붓는 것은 하늘의 魂령과 땅의 백(魄) 즉 유리된 혼백을 합하여 오늘의 자손들 제례를 받으시라는 뜻이다.
이때 술잔은 사기잔(盃)을 써되 제주(祭酒)는 淸聖濁賢이란 계급이 있어 청주를 올려야 하며 제복도 유록색 옷을 입는 게 예의다. 제례를 마친후 전철역엘 나오니 巨石 도봉산이 보여 수년전 교원대 총장 신극범씨께서 저를 데리고 도봉산 앞 연산왕과 愼비 제향을 참배한 추억이 떠올라 下記는 조선조 비극의 주인공들이 居昌과는 무관치 않아 일필휘지 하노라. 연산군의 妃 愼氏는 조선조 사마시에 급제하고 예조판서와 영의정을 지내고 居昌부원군에 봉한 愼승선의 딸님이요 중종의 妃 愼氏는 愼승선의 子 좌의정 愼수근의 딸님이니 두王妃가 친정으론 고모지간이요 시가 쪽으론 동서지간이다. 고로 거창이 현(懸)에서 郡으로 승격되고 영조땐 慎妃의 복위로 居昌이 府로 승격된 역사적 사실이 있다. 연산왕을 폭군이라고 하나 一言之下 그렇지 않다. 1494년 성종이 승하하고 19세 나이로 王에 즉위하여 빈민구제,실록편찬 등 치적이 다대했으나 당시 당쟁이 끊이질 않던 차 연산왕의 생모 尹氏가 父王의 후궁 鄭씨와 嚴씨의 모함으로 사약을 받고 죽었다는 비사를 듣곤 연산왕은 격노하여 두 후궁을 쳐 죽이고 조모 인수대비마저 치사케 했다. 또 생모 사사(賜死)에 동조한 윤필상, 김굉필 衆臣들을 살해하고 자기의 세자책봉을 위해 明나라까지 다녀온 重臣 韓명희의 묘를 파선 부관참시를 하니 갑자사화의 계기가 되었다.
연산군 모함이 언문이라고 한글사용을 금했으며 사관원(司諫院)을 폐하여 신하들의 言路를 막았다. 각도에 채홍사 採靑使를 보내어 홍안美色女들만 뽑아와 성균관 유생들을 몰아내곤 雜技놀이“여자들 궁둥이를 까곤”말 타듯이 황음(荒淫)을 일삼으니 보다 못한 愼비께서 읍소하며 거지(拒止)하나 무용이었다. 연산일기에 王多殺不韋淫縱無道 日夜憂悶’왕이 사람들을 막죽이고 음란 방종함이 끝이 없어 밤낮으로 근심하니... 愼비께서 울며“흥청망청”이 나라망치겠소 하나 왕은 유구무언하였단다.
이때(1506년) 참판 성희안,박원종 등이 反正을 도모하니 연산왕이 사냥을 나간 차 왕비의 오라버님 좌의정 愼수근과 愼수영 두 형제를 창덕궁에서 척살을 하곤 中宗을 경복궁으로 맞아 익선관(翼蟬冠)을 씌우곤 왕좌에 앉히니 君弱臣强이라 나약한 임금도 몸둘바를 몰랐단다. 同 3일 영상대감 유순,박원종,성희안 충신들이 중종께 아뢰기를 愼비는 신수근의 딸이니 反正을 반대한 家門이라 신하들이 앞으로 화를 입을까 두려워 폐위를 종용하자 中宗왈“조강지처는 不下堂”이라 어렵게 살아온 아내를 出妻할수있냐며 읍소를 하였지만 愼비를 鄭현조 私家로 쫓으니 宮은 시녀들 통곡소리로 진동을 했고 그때 신비 나이 20세로 가슴을 찢는 인고의 날이 시작되었다. 中宗이 보고 싶어 경복궁 근정전이 보이는 인왕산에 올라 홍상(紅裳)치마를 바위에 펼쳐서 임금을 기다렸으나 反正자들에 발각되어 인왕산 入山을 금했으니 창자를 끊는 단장의 세월 52년을 독숙공방타가 71세 폐비로서 비운을 맺고 말았다.
허나 1739년 영조께서 國父를 협박하고 國母를 폐출시킨 중죄인을 상소타가 억울하게 죽은 조광조,박상,김정,유옥 등 기묘사화에 휩쓸린 충신들에 보답으로 愼비를 복위시키고 능호를‘온릉(溫陵)’으로, 石羊,石馬와 文人石,武人石,長明燈을 세워 능답게 꾸미곤 비석엔“단경왕후 愼氏之墓”로 새겨주었으며 연산왕도 폐군으로 강화도 외딴섬 초가에 유폐를 시켰으나 석달뒤 1506년12월 설한풍에 愼비만 부르다가 사람 한 평생이 풀잎에 이슬 같다며“人生如草露”를 되씹고는 파란만장한 생애 31세로 요절하니 왕으로 등극한지 10년이라 權不十年말처럼 조선조 최대 비극을 연출한 왕으로 한 획을 그었다.
참극은 여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연산군과 愼비 사이에 2男1女, 계비 몸에서 2男1女 중 君의 子는 모두 사약을 내려 죽이고 愼비 소생 공주는 능성具씨 가문으로, 계비 소생 옹주는 거창愼씨 집안으로 出嫁를 하여 출가외인으로서 화를 면했다.
고로 지금의 연산군 묘도 愼비가 중종께 간곡히 上言하여 부마 具씨 선산으로 이장을 간청한바 중종도 亡兄에 대한 혈연지정으로 개장을 윤허(允許),장례는 君의 禮를 갖추라 명하니 조정에선 수의와 곡물 100석 면포150필 굴2석 참기름 2삭 밀가루4석 향초28조를 내리곤 수행 시녀들도 3년간 상복을 입혔으며 능참봉과 제실을 두었지만 필자가 본 왕릉이 일반 평민의 유택처럼 초라했다. 石馬와 石羊 병풍석도 없고 3면이 낮은 곡장에 상석과 장명등 향로석뿐이었다. 두 비석엔“燕山君之墓”“居昌愼氏之墓”라 쓰여 있으나 愼자가 풍마우세로 닳아 眞자로 되어있어 우리 거창 愼門에서 음각(陰刻)을 청했으나 서울문화재 관리국 왈 그것이 역사의 흔적이라며 불허했다. 묘역 앞엔 수령 800년 된 은행나무만이 연산군의 비극과 단장의 愼비 생애를 지켜본 산 증인으로서 巨木답게 말이 없다.


-주필 신중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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