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페이지로  즐겨찾기등록  날씨정보  교차로
     
  2024년 4월 25일 목요일       기획 | 경제 | 사회 | 문화 | 교육 | 생활 | 건강 | 지역종합 | 사설ㆍ오피니언 | 시사만평 | 자유게시판   

  

오늘 방문자 : 2,351명
어제 방문자 : 2,146명
Total : 26,043,177명

  

아이디 
비밀번호 


아이디/패스워드
현명한 사람은 어리석은 자가 현자로부터 배우기보다도 많은 것을 우자로부터 배운다. - 카토 -
매일 중에서 가장 헛되게 보낸 날은 웃지 않은 날이다. - 상포르 -
소크라테스처럼 자기의 지혜는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자야말로 가장 현명한 자이다. - 플라톤 -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거창군협의회 독일 안보시찰 가져'
[2016-05-26]

 

지난 4월 8박10일 일정으로 독일, 체코, 헝가리, 오스트리아 4개국 시찰 통해
한반도 비핵핵화와 통일시대를 준비하며 해외 사례 통한 자문위원 역량 강화 계기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거창군협의회(회장 신현기)에서는 4월 15일부터 24일까지 8박 10일 일정으로 통일기반구축 및 안보의식 고취사업으로 독일 외 3개국 역사현장 견학, 하나 된 통일의지, 다가오는 평화통일을 준비하면서 한반도 비핵화와 통일시대 민주평통 자문위원들의 대한민국 평화통일을 위해 맡은바 역할을 다 할 수 있도록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안보시찰을 계획하고 사업을 추진했다.
민주평통 거창협의회 회원들은 4월 15일 인천국제공항에서 KE905편으로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으로 출발했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을 도착 독일 통일의 거점 구 동속의 문화도시였던 라이프치히로 이동하여 1박을 하고 세계 제2차 대전 후 일본의 무조건 항복과 전후 수습책을 협의했던 포츠담에 도착하여 포츠담회담이 열렸던 체칠리엔호프 궁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상수시 궁전 등을 관람했다.
1700년대에 건축된 상수시 궁전은 프리드리히 대제의 여름 별장으로 상수시란 근심 없는 궁전이라는 뜻으로 정교하고 웅장한 건축, 잘 보존된 상수시 궁전에서 유럽 역사의 단면을 볼 수 있었다.
체칠리엔호프 궁전은 역사책에 나오는 그 유명한 포츠담회담이 개최된 곳으로 우리에게도 의미가 깊은 곳이다. 포츠담 회담은 2차 대전 종결 직전인 1945년 7월 26일 미국의 트루먼 영국의 처칠, 중국 장세스, 소령 스탈린 등 수뇌부들이 모여 일본의 항복과 한국의 독립을 선언한 회담이다. 회담장 등 내부 곳곳을 이어폰을 통해 한국어 안내문을 들으며 둘러볼 수 있었는데 역사책으로만 보고 듣던 포츠담 회담 장소에서 역사의 산 교훈을 체험하며 전쟁으로 인한 아픈 역사의 기억들을 체험할 수 있었다. 안보시찰 첫날 유럽의 건축, 문화, 역사의 시찰 첫발을 내딛으면서 가슴에 와 닫는 느낌은 바로 역사의 진실들을 잘 보존하면서 후세들에게 산교육의 장으로 활용하는 능력이었다.
이어 버스로 40여분 이동하여 베를린으로 가는 도중 아우토반 고속도로로 접어들어 독일의 고속도로는 통행료를 받는 톨게이트가 보이지 않아 가이드에게 질문하니까 전범국가로서 책임을 지고 고속도로 통행료를 받지 않는다고 하면서 일본과 독일의 차이점이 일본은 전범국가로서 많은 부분에서 인정하지 않고 책임지러 하지 않지만 독일은 인정하고 반성하면서 책임을 지려고 하는 노력이 많은 것이 특징이라고 했다.
베를린 장벽 박물관장과의 세미나에서 “장벽을 통해서 자유를 멈추게 할 수는 없다”, “단지 시간이 걸릴 뿐이다”라고 하는 박물관 관장의 말처럼 독일과 한국의 분단 상황은 많이 다르지만 우리의 통일 의지가 확고 할 때 통일은 멀지 않은 것이다.
베를린 장벽에서 자유를 찾아 장벽을 넘었던 많은 사람들 중에 자유를 찾은 5,000여명 사람도 있지만 자유를 찾지 못하고 장벽 앞에서 죽어간 136명의 영혼들을 추모하기 위해 한켠에 기념비를 세워 사진과 사망년도가 기록되어 있었다.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채 피지도 못하고 분단의 아픔 속에 희생되어진 사람들이었다.
이제 지구상에 유일한 분단국에 몸담고 있는 우리로서 1989년 자유 왕래가 허용된 역사적 장소 앞에서니 마음이 답답하다. 장벽과 철판이 주는 차가움이 분단시절의 아픔이 전해왔다.
지금은 베를린 장벽이 역사의 교훈장소로 이들은 후손들에게 다시는 이전 일이 생겨서는 안 된다는 역사적 사실을 바로 전하려는 의도로 많은 관광객들이 관광의 장소가 되고 있지만 현재 우리나라는 남·북간 대립 국면 속에서 사실 이곳을 둘러보는 마음은 무겁기만 했다.
베를린장벽의 견학을 마치고 카이서 빌헬름 교회, 전승기념탑, 베를린 대성당, 홀로코스트 추도비를 둘러보았다.
특히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기념관을 보면서 독일인들의 반성과 추모, 그들의 진심에 박수를 보낸다. 베를린의 가장 중심부에 위치한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기념관’으로 회색빛 육면체들이 줄지어 모여 있는 공간이다. 회색빛 육면체 즉, 동양개념은 비림으로 볼 수 있다.
비림 속에서 사방이 막히고 위를 향해 보이는 하늘을 바라보며 절망 속에서 죽어간 영혼들의 아픔을 느껴 볼 수 있는 공간이었다.
20세기 초중반 독일의 역사에서 지울 수 없는 나치즘과 유대인 학살, 어떤 것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부당한 역사에 대한 민족 스스로의 반성과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와 반성의 의미로 이 공원과 운영한다고 했다. 동북아 식민지 역사에서도 그런 태도를 보여주지 못하는 전범국가 일본과는 대조되었다.
독일 민족의 우수성과 저력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3일차 베를린을 출발 2시간 30분정도 소요되어 구. 동독의 중심도시이며 독일 통일이후 문화, 관광중공업 등 많은 분야에서 활발히 발전하고 있는 드레스덴에 도착하여 츠빙거 궁전, 드레스덴 대성당, 잼퍼오페라하우스 등을 관람했다.
동독의 옛 수도 드레스덴은 슬라브어로 숲속의 사람이란 뜻이다. 독일의 피렌체라고 불린 만큼 아름다운 도시로 바로크 양식의 츠빙거궁전, 건축물은 말할 것도 없고 조각들 들도 하나하나가 예술작품으로 섬세하고 아름답기가 이루 말 할 수 없었다. 특히 궁전 외벽에 총 25,000개의 타일로 이루어진 군주행렬 벽화 역대 영주들이 그려져 있었으며 전쟁당시에도 폭격을 견뎌낸 위대한 문화유산이 있었다.
드레스덴의 신시가지와 구시가지 엘베강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괴테는 이곳을 유럽의 테라스라고 불렀다고 했다.
드레스덴 대성당은 독일 최초의 오르간 제작자로 유명한 질버만의 웅장한 오르간으로 화려하고 아름다운 로코코 양식의 설교단, 성당 지붕 위 장식이 너무나 멋지고 웅장했다. 400~500년 전의 건축물들이 하나같이 잘 보존되고 현재도 주거용으로 교회로 각종 문화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었으며 도로 또한 예전에 마차길이 아스팔트 포장으로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로 변화 된 것 밖에 없을 정도로 도시계획이 완벽했음을 볼 수 있었다.
일년이 멀다하고 도시계획이 바뀌며 공사가 이루어지는 우리나라와는 차원부터 틀렸다. 성당들을 돌아보면서 웅장하고 화려한 장식 그리고 요람에서 무덤까지란 말처럼 왕들의 무덤이 성당 내에 즐비했다. 우리가 역사책에서 배운데로 신권이 왕권의 위에 있었음을 알 수 있었으며,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하며 성장한 유럽의 국가들이 선진국으로서 자리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4일차 1968년 “프라하의 봄”으로 불리우는 동유럽 자유화 운동의 시발지 프라하에 도착했다.
프라하는 증세시대 중부유럽에서 기독교가 발전과정에서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고 수많은 기념물과 아름다운 도시 경관을 자랑한다. 프라하 역사 지구는 중세시대부터 현재까지 도시가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그 과정을 감탄스럽게 보여주고 있다. 이 도시는 14세기부터 중부 유럽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면에서 진화하는 과정과 건축과 예술의 전통을 세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대통령 관저로 사용되는 프라하 성, 성비트 대성당, 황금소로, 당시 최고의 토목기술을 동원해 1406년 완공한 카를교, 바츨라프 광장, 성 니콜라스 교회, 틴 교회 등을 방문했다.
특히 올스타운 광장에 있는 천문시계는 1410년부터 지금까지 정교하게 천문학적인 다이얼과 해와 달의 위치까지 표시하는 시계로 오후3시 종을 울리며 종소리를 듣기 위해 인산인해를 이룰 정도로 그 유명세가 대단했다.
프라하는 한국의 관광객들을 많이 볼 수 있었으며 신혼여행, 단체관광, 개인자유여행객들이 자주 만날 수 있었으며 서로 정보 교환을 하고 타 곳에서 만나는 한국 사람은 정말 반가웠다.
성 니콜라스 대성당의 웅장함과 위엄에 압도당하며 유럽의 모든 문화는 교회에서 시작되어 교회에서 끝나는 것임을 알 수 있을 정도로 건축양식, 예술이 아름다움의 극치였다.
프라하는 사람들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독특한 공연을 하는 사람들이 참 많았다. 특히 카를교와 프라하 성 구시가지 광장근처에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각종 공연들이 눈을 사로잡으며 이들의 생활상을 느낄 수 있었다.
유렵사람들은 확실히 우리나라 사람보다 자유론 모습으로 길거리 흡연의 자유로움, 연애할 때 한국에서는 대부분 남자가 고백하지만 체코나 유럽을 확실히 먼저 좋아하면 남자, 여자 따지지 않고 솔직하게 고백한다고 한다. 또한 유럽은 모계 중심사회인 것 같다. 남자 여자 결혼을 하면 가족중심으로 하루일과 8시간 근무가 끝나면 가정에서 가족과 함께 보내고 남자가 늦을 경우 1주일 전에 아내에게 허락 받아야 가능하고 어길 시 이혼을 당할 만큼 아내의 권위가 높고 가사도 50:50 분담이 확실하다고 했다.
5일차 다뉴브의 진주라고 불리는 부다페스트에 도작하여 ‘어부의 요새, 왕실의 성당인 마챠시 교회, 부다왕궁, 겔레르트 성인의 순교지인 겔레르트언덕, 국회의사당 비치거리 등을 견학했다. 부다와 페스트 지구가 강을 두고 나눠져 있었으며, 이 둘이 합쳐져 부다페스트가 되었다. 깔끔하게 잘 정돈되어 있었던 비엔나 비해 다소 시끌벅적한 부다페스트 첫인상!
도나우강 주변으로 펼쳐진 유럽풍 국회의사당을 비롯하여 수많은 건축양식들이 다채로웠으며 야경은 그야말로 황홀했다. 마챠시 성당은 프란츠 요제프 황제와 엘리자베스 황후의 대관식이 거행되었다고 하니 더욱 관심 있게 보게 되었으며 특히 지붕의 모자이크 양식이 이국적이었다. 마챠시 성당 바로 옆 어부의 요새 여기에서도 달빛이 걸려 있었으며, 4월이라 그런지 바람이 세계 불었으며 조금 추위를 느낄 수 있었다. 영웅광장의 부다페스트 조형을 앞에서 헝가리 젊은이들과 함께 사진도 찍고 어설픈 영어로 서로 대화도 하면서 헝가리 역대 왕들의 웅장한 모습의 조각들이 감명 깊었다.
부다페스트는 역시 관광 도시로 유럽의 명소였다. 역사적 유물들이 문화와 함께 고스란히 숨 쉬는 유서 깊은 도시로 끝없이 펼쳐진 도심을 바라보면서 이념과 사상의 대립이 없고 전쟁이 종식 된 하나의 국가 우리나라도 통일 한국이 된다면 이처럼 자유와 풍요의 나라로 아시아의 허브로 자리 할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6일차 오스트리아 비엔나는 동유럽의 관문이며 문화, 정치 거점도시이다.
로코코 양식의 대표라 하는 여름궁전 쉔부른 궁전, 비엔나의 상징 성 슈테판성당, 케른트너 거리 국립오페라하우스, 시립공원, 훈데르트바세 하우스를 방문했다.
비엔나 도시 곳 곳 유서 깊은 동상들과 그리고 푸르른 공원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함스부르크가의 여름왕궁 베르사유궁전과 더불어 유럽에서 가장 화려한 궁전의 하나로 유럽 제일의 명문가 ‘함스부르크 왕가’를 제대로 경험했다. 그 다음 오스트리아의 가우디로 불리우는 훈데르트바서의 박물관으로 실제 가우디우 제자이며 비엔나를 대표하는 화가겸 건축가로 자연과 조화를 중시하며 나선과 곡선만을 이용한 건축이 특징이었다. 빈의 상징인 슈테판대성당은 카톨릭교회의 성당으로 빈 대교구의 대성당으로 오스트리아 최대의 고딕양식 건물로 역사의 산 증인처럼 그 중심에 서 있는 슈테판대성당의 길이가 107m, 천정 높이라 39m에 이르는 종교 건물로 높이 137m에 달하는 첨탑과 25만개의 청색과 금색벽돌로 만든 화려한 모자이크 지붕 타임이 실로 대단했다. 유럽 문화의 중심이 바로 성당이었다.
7일차 오스트리아 짤츠브르크로 이동하여 사운드오브뮤직의 배경 짤즈 감머굿 유람선 탑승, 할슈타트, 구시가지 등을 방문했다.
천혜의 자연경관이 어루러진 짤즈감머굿 호수의 유람선을 타고 멀리 드높은 알프스 산의 눈 덮인 설경을 마주하며 콜 총리의 여름 휴가처, 사랑의 기념비, 장크드 볼프강 마을, 코끼리 바위 등을 둘러보면서 유럽의 자연 환경의 진수를 볼 수 있었다. 이어 할슈타트 호수로 이동, 신이 만든 아름다운 자연과 인간이 만든 아름다운 마을을 동시에 볼 수 있었다. 지하 2Km에서 암염을 제취하는 광산 마을이기도 했다. 할슈타트는 한 폭의 동화 속의 나라에 온 듯한 고즈넉한 풍경에 신이 빚어 놓은 아름다운 예술품이었다.
8일차 짤츠부르크 중심지로 이동 바로크 양식의 미라벨 정원, 모차르트 상가, 호엔짤즈브르크 성, 대성당을 관람하고 독일 경제, 금융, 문화, 스포츠의 중심도시 독일 뮌헨을 방문했다.
모차르트 생가는 1756년 1월 모차르트가 출생하여 1773년까지 살았던 생가로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영화 사운드오브유뮤직에서 도레미 송을 부르던 마리벨 정원, 게르하르트 거리는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거리로 간판하나 하나 예술성이 우수한 창작품으로 볼거리가 풍성했다. 호엔 짤즈브르크 성의 특징은 묀히스베르크 언덕 위에 우뚝 서 잇는 짤즈브르크의 상징으로 온전히 옛 모습을 보존하고 있는 중부 유럽 최대의 성이었다. 짤즈브르크 대성당의 내부에 6000개의 파이프로 된 유럽 최대의 파이프오르간이 웅장함을 더하며 일찍이 모차르트가 연주하였다고 했다.
유럽은 어디를 가든지 넓게 펼쳐진 평원, 질서 정연한 모습속의 자유, 고딕양식의 건축물들이 눈과 마음을 사로잡으면서 역사의 소중함 그리고 종교의 위대함을 가슴깊이 느낄 수 있었다.
9일차 독일 하이델베르그로 이동 하이델베르그 고성, 대학을 관람하고 프랑크푸르트로 이동 시청사, 뢰머 광장, 괴테 생가, 대성당 등을 방문했다.
하이델베르크는 인구 15만명 중 학생, 교수, 교직원이 2만7천명 정도라고하니 명실상부한 소교육도시로 하이텔베르크 대학을 탐방하면서 대학 건물 속에 깃들어 있는 학구열을 느낄 수 있었다. 고풍스러운 유럽풍 건물들로 캠퍼스가 한 곳에 밀집해 있는 것이 아니라 도시 전체에 흩어져 있는 것이 특징이었다. 하이델베르크 성은 몇 차례 전쟁으로 인한 성의 일부가 무너진 채로 보존되고 일부는 복원공사가 한창이었다. 또한 이 성의 특징은 중세시대 화폐와 같이 쓰인 포도주를 저장하는 술통이 있었다. 그 크기가 엄청났다. 포도주로 통의 크기가 경제력을 나타내는 척도였다고 하니 하이델베르크 성주의 영향력을 가능케 했다.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하여 BMW 본사를 방문, 화려한 자동차를 시승하며 사진도 찍고 BMW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이어 쾰른 대성당의 웅장함에 압도당하며 정교한 조각들 내부의 아름다움 속 하나님을 향한 찬양과 경배가 절로 나왔다.
유럽 선진국들의 특징은 기독교가 신앙의 중심으로 삼은 독일, 오스트리아는 선진국 중 단연 최상의 위치에 있었다. 성당 및 교회의 십자가 보다 높은 건물을 지을 경우 종교청의 허가를 받아야 할 만큼 신본주의가 분명했다.
결국 난민 문제도 종교적인 부분에서 이교도들과의 혼합이 문제가 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프랑크푸르트, 짤즈부르크의 1인당 국민 소득이 77,000불에 이를 만큼 경제적으로 대단한 도시였으며, 인구의 70%이상이 기독교였다.
8박 10일간의 유럽 4개국 안보시찰을 마치고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출발하여 인청공항까지 9시간 30분 걸려 도착했다.
금번 유럽안보시찰을 통해 국방이 안정되고 이념대립이 종식될 때 하나 된 한국 통일된 한국이 되었을 때 대한민국은 세계 속에서 성장할 수 있는 제2의 동력을 가질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의 통일은 삼팔선으로 가로막을 수 없으며, 통일을 향한 국민들의 열망이 통일시대를 앞당길 것이라 확신하며, 우리의 통일은 좀 더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우리들은 흔히 해외여행을 외유성 관람이라고들 한다.
옛말에 “서울 안 가본 사람이 서울 가본사람을 이긴다.”는 이야기가 있다.
역사적 장소에 직접 방문을 하고 눈으로 보고 가슴에 담아 입으로 말하며 보고 듣고 배운 것은 우리 삶과 현실에 적용하여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 비전을 만들어 가야한다. 선진문화유산 견학, 조기유학, 해외 자유여행 등이 권장되는 이유가 분명히 있다. 우물 안 개구리식 사상으로서는 내일을 만들어 갈 수 없는 현실이 오늘이다.
흔히들 지금 사회는 10% 리더 그룹이 세상을 움직여 가는 시대라고들 한다.
10%의 리더 속에 우리 각자는 내 자녀가 속하길 소망한다. 이제 이 소망이 내 자녀들뿐만 아니라 본인들도 거창에서 전국으로 세계 속으로 눈을 높여 기회가 된다면 과감히 일상을 벗고 경험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거창을 넘어 경남, 대한민국이 변하기 위해서는 나부터 먼저 변할 수 있는 마인드 강화가 필요한 것이다.
금번 민주평통 자문위원으로 참여한 안보시찰 속에서 나부터 변하는 계기가 되었다.
2016. 5. 26.
민주평통거창군협의회 자문위원 김 석 태

 

 

   
 

 

참 여 자 내     용 점    수

본 기사에 대한 나의 생각 쓰기 - 여러분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

참여자 ☞ 이름 :   비밀번호 :   점수(본기사) :
자동등록방지
내   용 ☞
                
No '문화'와 관련된 최신 기사 기자 날짜
925  94개국 기독교인이 함께하는 박옥수 목사 온라인 성경세미나 개최   거창시사뉴스 2020-05-06
924  거창군립한마음도서관, 2020년 상반기 문화강좌 강사 공개 모집   거창시사뉴스 2020-01-16
923 거창 한우가 대한민국이 보증하는 '씨수소'로 선발됐다.   거창시사뉴스 2020-01-09
922  ‘담박영정(淡泊寧靜)’이란 말이 있습니다.   거창시사뉴스 2020-01-09
921  산타할아버지 깜짝선물로 연말을 따뜻하게   거창시사뉴스 2019-12-19
920  우리소리국악원 김진찬 원장의 두 겨울의 찬가 제2회 정기발표에 붙여…   거창시사뉴스 2019-12-09
919  경남도립거창대학, 수시전형 면접 축제의 장으로   거창시사뉴스 2018-10-11
918  거창윈드오케스트라 가을 맞이 『클래식과 재즈의 만남』   거창시사뉴스 2018-08-29
917 2018 녹색곳간거창 농산물대축제에서 한판 놀아보세!   거창시사뉴스 2018-08-29
916  9월 6일은 소통과 화합으로 하나 되는 날!   거창시사뉴스 2018-08-29

 

 

포토뉴스
 
'거창관광 실무협의체' 발대식,
(사설)“화장장 건립” 시대적 요
위천면 주민자치회, 2024년 봄맞
나들가게 42
거창군, 스마트 농업의 미래를
 
 
(붓가는 대로) 예술가 폼
(편집국 소리)유단취장(有短取長

(사설)거창군체육회장 보궐선거?

지난 22년 12월 22일에 제2대 거창군체육회 회장 선거가 있었다. 선거가 끝나고 제2대 거창군체육회장으로 취임한 신영균회장은 체육학과 교수 출신답게 앞선 행...

 
(웃음)

웃음전도사 김종철...

 
   

  

 

거창시사뉴스     경서교차로

(명칭)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경남 아00136 (등록연월일) 2011.4.4
(제호) 거창시사뉴스 (발행인.편집인) 이안나 (전화번호) 055-945-1809 (교차로) 055-942-6613 (팩스) 055-943-0406
(발행소) 50133 경남 거창군 거창읍 거창대로 97 2층 / (이메일) kyochkim@naver.com
(발행연월일) 2013.7.19 (청소는보호책임자) 이안나
Copyright ⓒ 2004  거창시사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