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가는 대로) 日, 윤대통령 오무라이스 굴욕'
[2023-03-23]

 

나라와 나라간 협력외교 방면의 일을 잘 모르는 나는 왠지 이웃 일본과는 가까이 해선 이롭기는커녕 본전 건지가 여려 울 것 같은 두려움이 앞서 깨끔치 않음을 뇌리에서 지울 수가 없다. 세상물정에 어둡다 보니까 대통령을 위시한 위정자들이 어련히 알아서 잘들 할 까? 로 믿는 구석이 있기에 대법원장국회의장장관들 이름조차도 단 두 명 윤대통령과한법무부장관을 제외하곤 모른다.
전에 문 정부시절 강경화란 전 외교부장관이 UN기구의 어느 장 자리에 출마연설장면을 TV에서 시청한 바, 외국어언어구사능력이모국어를 능가할 정도인 자랑스러운 그 모습을 보곤 저렇게 훌륭한 이들이 앞장서서 돌보는 나라 일에 안도감을 가졌다. 그 시각이후 세상사 관심을 끄곤 TV선을 뽑아 뉴스와 담을 싼 채로 느긋하게 한가히 술 마시고 잘 지내던 터였다.
한데 오늘 윤대통령일행이 국빈초청을 받아 일본에 간 대통령에게 일본정부가 ‘오무라이스’ 란 음식을 의전 접대한 오무렛omelet이 만찬메뉴라는 신문에 크게 난 굴욕적인기사를 본 후 TV코드를 다시 꼽아야 할까 의 충동을 받았다.
일본 음식에 대하여 나름 한마디 거들면 불교가 552년에 일본에 전래된 후 국교이다시피 오랜 기간 동안 유지되어 종교적 차원에서 육류 고기를 금기시 해 국가에서 법으로 육류 섭취를 금하였었다. 그래서 「일본에 서양음식이 들어오면서 양식에 밥을 유지하면서 서양의 식재료를 전통적인 요리와 변형하여 일본식 서양요리가 창조된 것이 그 원조랄까 시초라 하겠다. 여기서 양식요리중심에서 밥을 뺀 다는 것은 일본에선 있을 수가 없는 필연적 현실이기도 했다. 메이지 20년,1800년대가 끝나갈 무렵에 개발된 /‘카레라이스’ 외에도 ‘하야시라이스’ ‘오무리이스’/ 등 밥이 중심에 있는 서양요리가 그것을 반증해 준다. 프랑스의 크로켓croquette을 흉내 내어 대중요리 고로케가 등장한 것은 메이지 30년 1890년대다」
메이지 유신 이후 문명개화의 상징으로 쇠고기를 들 수 있다. 쇠고기는 하이칼라의 이미지가 있었고 무엇보다 맛이 좋았다. 그러나 곧바로 스테이크를 먹게 된 것은 아니었다. 전골과 구이 비슷한 일본고유의 쇠고기 요리로 변형되었다. 화양절충和洋折衷이라했던가! 일본식과 서양식의 절충양식 이라는 일본식요리의 틀 안에서 쇠고기가 융합되었으나 그것은 메이지 시대까지 살상을 금하는 불교교리에 의해 육식이 금지되었던 것과 깊은 관련이 있다.
세월이 흘러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일본인은 책상다리를 하고 먹는 ‘아구라나베’란 쇠고기전골에 새로운 시대의 돌풍을 예견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국문화의 체험일 뿐 일상생활에 성급히 파고들지는 못했다. 서양의 식재료는 서서히 시간이 흘러 일본 형식으로 융합되면서 일본식서양요리 양식洋食 으로 바뀌었던 것이다. ‘스키야키’라는 전통적인 쇠고기 요리에서 간토 식 전골 요리로 변하였고, 돈카츠와 프라이는 덴푸라로, 팥빵이나 잼 빵은 만쥬로 바뀌었다. 서양음식요리의 도입은 한마디로 말해 일본식문화에 육고기식용 금지의 해금에서 비롯된 것을 알 수 가있다.
식재료가 고기중심인 서양과 완고하게 쌀 문화를 고집하던 일본과의 식재료 및 음식문화 그 맛의 갭은 엄청 컸었다. /1872년에야 메이지 천황이 처음으로 쇠고기를 먹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러나 오래된 식습관을 바꾸기란 쉽지 않았다. 그 무렵 도쿄에 신식호텔이 생겨 전문쇠고기 요리점과 더불어 사교장이 등장 서양생활 습관이 상류계급에서 시작 되었지만 양식이란 이질적인 요리가 서민 생활화하기엔 메이지시대에서 다이 소 시대 에 이른 짧지 않은 긴 시간에 걸쳐 서서히 가정요리에 침투하게 된 셈이다.
대통령 의전비서실에선 국빈만찬의 격식절차를 모르는 걸까? 영국버킹검 궁 미국백악관 만찬 메뉴를 그림으로라도 보고 듯도 못했을까? 한국군군식당 메뉴에서도 오무라스는 하급으로 치는 라면 급이다. 이유야 어떠하건 무조건 타국 대통령 불러다놓고 치사하게 먹는 것으로 개망신을 준 인간망종 잔나비들 꼴값에 넌 저리를 친다.
경제적G D P가 이제 대등한 입장이고, 우리에게선 사장된 도장문화가 일본에선 영구히 없어질 기미가 없는 행정구조다. 구두 닦기도 자랑스럽게 3대 째 대물림 받았다고 전통을 자랑하는 나라가 일본이다. 이런 아날로그시대에서 스피디하게 I C T컴퓨터시대로 전환하긴 꿈같이 요원하다. 우리는 일선 공무원 이수작업에서 디지털전산정보화로 전환한지가 40년이 넘었다. 메모지 외엔 책상위에서 종이 쓸 일이 없어졌다. 일본은 호적등본을 띠러 시골 고향으로 아직도 가는 그 나라에 기댈 것은 전무하다. 그런 /일본이 물 컵 반을 채워주기는 천만의 말씀만만의 콩떡이다/제 코가 열자 인 걸 남 줄게 없다. 어리석은 윤 정부가 향 후 일본에게서 얻을 것은 후쿠시마 원전사고오염 수와 방사능물질세슘에 절인 먹어선 안 될 농수산물밖엔 건질게 없음을 잊지 말아야 하고, 가슴깊이 새겨둬야 할 것이기에, 일본과의 공존은 헛수고잠꼬대일 뿐, 아득히 멀다는 것이 필자의 견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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