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가는대로] 비위 거스르는 말이 약

작성일: 2018-04-26

모 회사에서 사장이 입사한지 일주일쯤 된 신입사원에게 “무엇이나 말하고 싶은 의견이 있으면 내게로 와서 말해도 좋다”고 조회 때 말했다. 사장실로 돌아 온지 채 10분도 안돼서 한 신입사원이 찾아와서 “이 회사는 모집안내와는 얘기가 다르다” 고 불평을 했다.
설마 찾아오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던 사장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내쫓아버렸다. 그 뒤 사원들도 머잖아 하나 둘씩 회사를 떠나 갔다. 사장은 “무엇이나 사양 말고 말해보라” 고 말한 주제에 그걸 입에서 뱉자마자 까맣게 잊고선, 나중에 가선 발언에 제한을 두고, 괜한 이유를 붙이곤 한 것이다.
이건은 신입사원이라서 정직하고 고지식하게 말했을 뿐, 정작 고참 들은 회사의 경영방침이나 최고경영자의 겉과 속마음을 알아차렸으니까 입을 다물었던 것이다.
어저께 좀 이른 퇴근길에 모 입후보자가 천천히 로터리를 차로 돌아가는 내게 절을 하는 것이 너무나 딱해 보여서 내려서 격려 인사와 아울러 절 좀 안할 수 없느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정색을 하곤 꼭해야 한다고 하여선 하고픈 일을 포기하기가 쉽지 그 짓을 꼭해하느냐고 한즉 다소 불쾌한 표정으로, 고개 수그린 절과 수인사를 절충하겠노라했다. 우선 다급한 그이의 입장에선 그게 최우선이겠으나, 당선되면 고개를 뒤로 저칠 짓을 왜 하느냐 했더니, 계속 절하는 자세로 임할 것이란 대답을 들었다.
고지식한 신입사원처럼 죽을 날을 받은 거나 진배없는 내가 주책바가질 부렸으나 내 딴에는 진심어린 조언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찍혔고 돌이킬 수없는 실수에 허탈한 맘을 가눌 수 없었다.
인생 의기意氣에 감화 한다는 말도 있다. 그래서 자기의 존재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선 목숨까지도 버릴 수 있다하니 돈이나 명예 따위는 제2, 제3의 문제인 것이다. 이건옛날 춘추전국시대에나 있을 법한 일인가 싶다. 중국당나라 시詩에 나오는 “인생 의기에 감화함이 없이 어찌 공명을 하겠는가.” 하는 말도 있다. 인간은 마음에 느낀바가 있어서 비로소 일을 하게 되는 것이지 돈이나 지위만으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인간성을 노래한 말이다. 요즘 세태로 보아 나처럼 시대에 한참 뒤진 사람의 얘기가 아닐까.
내 친구 중에 초등학교 교장출신이 동네 이장을 하겠다는데 두세 번 낙방하곤 이젠 안하겠단다. 하고 싶은 출마의 변이 있을 터이고, 또 안 되는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해봤다.
나는 평생노동이라곤 해보질 않았지만, 러시아 작가 고리키는 “일이 고통이라면 인생은 지옥이다”라고 했는데 입후보자가 절하는 일을 고역이라고 하는 자에겐 그 일이 노동인 것이다. 그러나 천직天職이라고 생각하는 측도 있을 거다. 객관적 입장에서, 남이 보면 고통인데도 하늘이 자신에게 내려 준일이라고 믿고 허리 수그려 절하며 헌신하는 것일 수도 있다. 서양에선 직업을 코링colling이라고 말하는 것도 신에게 부름 받아 천직을 다한다는 뜻일 게다. 설사 나의 조언이 틀렸더라도 귀 기울려 주어 고맙다.
림부륙의 붓 가는 대로 r2005@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