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가는대로>시오니즘의 실과 허

작성일: 2005-06-13

시온 이란 이스라엘 성도 예루살렘 근처에 있는 산의 이름으로 여호와가 있는 곳을 말함이고, 시온주의 운동이란 유태인 선조의 땅인 팔레스티나에 민족국가를 재건하려는 운동을 일컬음이다.
그 조그만 언덕이 나라 없는 유태인들에게는 꿈에도 잊을 수 없는 조국의 동산이요 마음의 고향이었다.
“시온 백성은 시온으로 돌아가 시온의 나라를 세워야 한다고 그들은 외쳤다.
이렇게 이스라엘은 1948년 5월 독립을 쟁취했다. 그것은 지금부터 2천년 전에 유대인들의 자주독립의 억압이 시작된 이래 맞게된 획기적 사건이었다. 모세의 영도아래 이집트의 학정에서 벗어나 오랫동안 광야를 헤매던 히브리의 노예들이 머리를 돌렸던 곳이 바로 가나안 복지라 불리는 이스라엘이었다.
기원전 70년경, 예루살렘이 함락된 후 로마 군에 포위된 가운데 죽음으로써 끝까지 지키려 했던 960명의 유대인 순국 자 들이 묻힌 ‘앗사다’는 유태인 조국 광복의 상징이 되어 왔으며, 19세기 중엽에 일어난 시온주의 발단 또한 눈물겨운 것이었다.
나라를 잃고 2천년 동안이나 세계를 떠돌아 유랑하면서도 동화되지 않고 모질게 살아남아서 헤쳐 모여 나라를 세우고, 불과 3백만의 인구로 1억5천만의 아랍제국과 겨루어 6전6승 전 승을 했다함은 참으로 놀라운 기적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로 세계는 이스라엘 국민의 강인한 정신력과 애국심에 찬사를 보내는 동시에 경의의 눈으로 주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지만은 않다. 나라를 잃은 민족이 한둘이 아니건만 그들만이 유독 나타나 문제를 삼아 그토록 혹독한 박해와 천대, 모멸과 질시를 받고, ‘더러운 유태인’ ‘지독한 유태인’ 이라는 치욕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지 않는가? 왜 지금도 유태인이라 하면 어느 누구도 그들에 대해서 편안한 마음을 갖지 못하는가? 그것은 무엇보다 골수에 사무치는 그들만의 ‘하나님의 선택받은 민족’ 이라는 지독한 선민의식(選民意識)때문일 것이다. 그 정신으로 무려 2천년만에 기적과 같이 나라재건에 성공했지만 그 혹독한 박해와 고난을 당해야 했고, 아직도 끊임없는 문제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모든 일은 원인 지어 결과 있기에 자업자득이다. 스스로 제가 ‘잘났다, 일등이다’ 하는 생각은 뒤집어 보면 남을 얕보는 자 자기가 먼저 멸시 당하고 설움 받을 것은 당연 사다.
그럼에도 그들은 여전히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칼에는 칼 식으로 호전적이고 독선적이며 배타적이다. 그래서 승리를 자축할 여유도 없이 새로운 전쟁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세상에는 영원 한 승리도, 승자도 없다. 승자는 더 강적과 만나 더 피나게 치고 받지 않을 수 없다.
큰 승리가 싸움 없음만 못할 것인 즉, ‘우리가, 우리의 신이 이렇게 이겼다’고 결코 자랑이 될 수가 없는 것처럼 일본과 한국간의 오랜 앙금, 교과서왜곡파동, 독도영유권 주장, 정부 고위직의 잇단 과거사 망언 등 대일(對日)감정의 골이 악화일로로 마치 고장난 브레이크 같이 한쪽으로만 치달아 유대민족의 시온주의에 비유해 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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