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가인 황진이

작성일: 2009-07-06

조선 오백 년사에 기방의 풍류라면 황진이가 으뜸이다. 황진이는 개성의 황진사댁 첩의 딸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사서삼경을 외고 시와 글씨 소리와 가락(五音六律)을 겸비했고, 인물이 특출했다.
15세의 황진이는 아름다운 자태와 놀라운 글재주로 입소문이 널리 퍼져 뭇 총각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웃의 떠꺼머리총각이 까닭모를 병에 걸려죽었다. 구슬픈 상여 앞소리 매김과 홀어미의 통곡이 섞여 구슬프기 이를 데 없었다. 무슨 조화인지 상여가 황진이의 집 앞에 이르자 움직이지 않는다. 상여꾼들이 아무리 앞으로 발을 떼려 해도 발이 얼어붙어 꼼작 달싹도 하지 않았다.
아들의 짝사랑을 알고 있던 과수댁이 황진이 모녀에게 눈물로 호소하여 입던 속곳 한 벌을 얻어 관위에 덮으니까, 그제야 꼼짝 않던 상여꾼의 발이 풀렸다.
황진이는 어쩌다 마주친 이웃집 총각을 떠올리며 산모퉁이를 돌아 멀리사라지는 상여를 바라보다가 결심을 하게 된다.
그녀는 곰곰이 생각했다. ‘내게는 요기가 있어, 또 누구를 얼마나 더 죽여야 할지도 모르는 불상사가 두려워 일찌감치 기녀가 되어 뭇 남성을 기쁘게 해 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마음을 굳게 다진 황진이는 집안어른의 펄쩍뛰는 반대와 주위의 조소에도 불구하고 妓籍(기적)에 몸을 던졌다.
그런 연유에서 산수 경치에는 박연폭포, 남자로는 花潭 徐敬德(화담서경덕), 그리고 자신을 포함시켜 「松都三絶(송도삼절)」이라 큰소리 쳤던 방랑과 멋의 歌人(가인) 조선중종 대 화류장이 황진이였다.
기생을 일러 路柳墻花(노류장화) 花容月態(화용월태)라 했다. 무슨 말 인가하니, 길가의 버들과 담장 밑의 꽃, 아름다운 여인의 고운 용태를 가진 기생 즉, 창녀는 아무나 짓밟을 수 있다는 상대를 낮추어 보고하는 말이다.
기생이 된 황진이는 뛰어난 미모와 넘치는 風情(풍정), 소리와 춤의 놀라운 솜씨로 온 풍류계를 휘어잡았다. 장안의 난봉꾼 벽계수는 황진이와 짝짜꿍을 했지만, 명기 황진이도 도가 깊은 화담과는 배를 맞대는 통정에 실패했다.
옛날에는 떡을 치는 똑같은 고급 창부 일지언정, 풍류가 있고, 나아가 ‘인도주의적 생명의 존엄성’을 스스로 느껴 황진이가 기생이 됐다. 오늘날 연예인의 추문을 놓고 법은 진실은 은폐 한 채, 죽은 자를 두 번 죽이는 부관참시를 하여든다.
‘연예인들 노예계약’ 해놓고 고급매춘을 일삼는 두 얼굴을 가진 기획사가 ‘보도방’이 아일까? 빠구리를 해도 왕실 종친벽계수와 황진이 정도는 아니더라도. 늙은 놈들이 芳歲(방세)를 조져 죽여 놓고도 일말의 양심도 없는 친일파는 염통에 털 난놈들이라 어쩔 수 없나보다.
-벽계수의 시구 중에(중략)
“그대 한번 작별하면 만날 길 아득해라 이제 또 어느 곳에서 미진한 정 이어 보랴.”
맑은 하늘 옥 등잔에 심지 없는 불을 켜니 유정하다 저 달빛은 내방에도 비쳐드네. -황진이가.
이제 임이 가셨으니 유 등잔은 필요 없어 춘풍추우 들이분들 저 불 끝이 난 몰라라.
청산리 벽계수야 쉬이 감을 자랑마라 일도 창해하면 다시 오기 어려워라
명월이 만공산할 제 쉬어감이 어떠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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