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악어의 눈물
작성일: 2009-08-03
악어눈물 이 말은 셰익스피어가 그의 여러 작품 에서 쓰고 있는데, 이것은 당시의 문헌<바스렛트>에, “만약에 악어가 물가에서 사람을 발견한다면 될 수 있는 한 이것을 물어죽이고, 그런 뒤에 그 사람을 위해서 울면서 시체를 먹으리라.”하고 쓰여 있는 것을 많이들 인용하여 쓰곤 한다.
즉, 악어의 눈물이란 위선적인 눈물의 악어이며, 위선의 상징으로 쓰이는 말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하여 ‘악어의 논법’이란 말이 있다. 고대 이집트 전설에서 유래하는 것이다. 나일 강에서 악어에게 어린이를 빼앗긴 부모가 어린이를 돌려달라고 호소한다. 악어는 자기가 묻는 말에 대답을 할 수 있다면 돌려보내 주겠다고 말했다. 그 물음이란, 악어인자기가 어린아이를 돌려보낼 것인지, 돌려보내지 않을 것인지 알아맞혀 보라는 것이었다.
악어의 속을 어떻게 안 단말인가. 악어는 기껏 손에 넣은 그의 밥을 놔줄 까닭이 없다. 그러한 물음은 희롱삼아 낸 것이고, 만약 어린아이의 부모가, “돌려보내지 않으려 했을 것이다.”라고 대답했다면, “아니 나는 돌려보내려고 했었으니, 너의 대답은 틀렸어,”하면 그만이다. 반대로 돌려보낼 것이라고 대답해 봤자 결과는 똑같다.
“나는 돌려보내지 않으려고 했다.” 악어는 고개를 저으면 그만이다.
이리하여 ‘악어의 논법’이란 어느 쪽에나 갖다 붙일 수 있는 궤변을 의미한다. 누구나 악어의 교활함을 미워하겠지만 조금 반성해 본다면, 우리들 자신이 일상생활에서 사용하고 있는 논법이란 대개 이와 같이 자기에게 편리하도록 자기중심적으로 갖다 붙이는 궤변이 적지 않다.
비유해서, 농민단체가 깃발을 앞세워 시위하다가 깃대를 뽑아들면 “‘죽창’으로 전경을 찔렀다”라고 어용신문은 어김없이 대서특필한다. ‘죽창’이란 말이 틀린 것이 어까지나 깃대는 바지랑대 일뿐, 흉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필자 집 후원에 왕대밭이 있어서 대나무의 속성을 좀 안다. 대가 굵다면 마디사이를 톱으로 썰어 필통도 만들고 술잔 장대 소쿠리 등 에 쓰였다. 그러나 깃대는 끝이 가늘어 끝의 가는 부분을 낮으로 뾰족하게 치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일 뿐, 애초에 ‘죽창’을 만든 것이 아닌데 참 답답했다. 그래서 각목(다루끼)을 대나무대신 깃대로 썼으나 마찬가지로, 어른손가락 서너 개 합친 굵기여서 결 따라 툭 치면 부러지게 돼있다. 시위용 경찰봉에 맞은 젊은이들이 깃대를 빼들면 시위대가 굵은 각목으로 전경을 두들겨 팬 양 신문은 오도하고 있다. 이뿐인가? 농민시위대가 상경하는 정보를 아는 경찰이 고속도로를 막아, 시위대차가 고속도로에 서 있으면 시위대가 고속도로를 점거 했다는 등 몇 신문의 농민에 대한 악의적 보도를 규탄하는 것이다. 이래서 양식 있는 국민은 ‘언론악법’이라고 반대하는 것이다.
지금 국회에서 행해지는 의회 민주정치마저도 부정한 정치, 말로만 민주주의적 세력구조로 합법을 위장한 미디어 법 국회의장직권상정통과에 대해 옥신각신 투쟁하는 것이다. 정치란 뭔가? 정치를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하는 온갖 잡스러운 행위? 아니 정치의 사전적 의미는 사회갈등통합제시, 리더십… 뭐 이런 거 ‘악어의 눈물’ 같은 걸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