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가는대로> 멈추지 않고 채우려 함은
작성일: 2009-10-19
내 마음속에 욕심의 그릇이 들어 있다. 나는 그것을 채우려고만 했었지 비울생각은 없었다. 노자는 들고 채우려 함은 차라리 아니함만 못하다고 일러, 욕망을 버려야 비로소 충만이 온다고 했다.
두메산골에서의 어둠은 갑자기 산에서 내려온다. 해가지는가 싶으면 이내 사방이 캄캄 해 지는 것이다. 마루턱에 앉아 노을과 지는 해와 어둠에 스러지는 산 그림자를 바라본다.
여러 형상의 저녁구름, 갈지자 之 첩첩산중의 푸름 속에 가는 것은 무엇이고 머무는 것은 무엇인가, 머문 적 없으니까 끝내 머무름은 모르고 흘러간바 없으니 흘러감을 모른다. 무심마저 녹여버리니 텅빈 충만이 내안에 스민다.
내게 큰 병이 온 것은 내가 살았다는 증거이다. 내 몸이 없었던들 무슨 몸에 대한 근심이 있을까? 몸에 오는 근심의 궁극은 죽음일진대, 병과 죽음은 사람이 몸을 가진 까닭에 피할 수 없는 일인데, 노자는 근심과 몸을 한 금에 놓고 귀하게 여기라고 가르치니, 곱씹어 볼만한 대목이다.
깨달은 자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듣고 얻을 수 있다. 깨닫지 못하는 자는 눈앞에 놓인 것도 못보고 귓가에서 떠들어도 듣지 못하며 손에 쥐어주어도 잡을 줄 모른다.
오늘이 있음은 지나가는 현상에 지나지 않아 일어났다 없어지는 것은 늘 근본에 비추어보아야 그 실상을 볼 수 있다.
태초에 바다가 있었고, 흙이 생겨났다. 물은 대지보다 오래된 것이요, 해가 나고, 식물이 생기고 길짐승이 나타났다. 그것들은 해와 달을 이고, 비구름 강들과 바다, 흙 위에 퍼진 씨앗들이 일궈낸 울창한 숲과 더불어 생장했다.
“짐승과 새, 풀과 나무들은 위대한 정령이 이 땅에 보낸 것이다. 풀과 나무는 위대한 정령에게 지혜를 얻어 싹을 튀 운다. 해와 비의 세례를 받은 부분은 땅위로 올라와 푸른 잎과 줄기가 되고, 뿌리는 수분을 찾아 땅 밑으로 내려가는 것이다.
최초의 인간의 조상들은 이 흙 위에서 살다가 죽었다. 조상들의 피와 육신과 뼈의 먼지로 이루어진 것, 즉 흙은 나고 죽는 것들의 모둠 살 이를 떠받치는 물적 토대이다.
나는 산골에 엎어져 사는 백면서생이다. 저 도시의 광란과 무절제의 무간지옥을 거쳐 이제 먼 산을 바라보며 뒤늦게 정신을 차린 탕자의 몰골로 가녀린 삶을 놓지 못하고 있다. 아직 계율과 刊經간경을 한번쯤 되뇌어 보는 선사의 일화.
어느 날 한 승려가 수행이 깊은 선사에게 와서 말했습니다.
“새로 들어온 승려입니다. 가르침을 내려 주십시오.”
그러자 선사가 말했지요. “그렇다면 들고 온 것을 내려놓게나.”
“예? 제 손엔 아무것도 들려 있는 게 없는데요.”
“그래? 그럼 계속 들고 있게나.”
그때 젊은 승려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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