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몸짓을 보면 사람을 안다
작성일: 2009-10-27
행동거지를 보면 상대방의 인품을 미루어 헤아릴 수 있다. 예외이긴 하지만, 탤런트들의 연기는 마음 따로 행동 따로 논다. 그러니까 마음에도 없는 말을 천연덕스럽게 예사로 하고 돈을 번다. 하지만 일상대화에서의 말과 몸짓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 사람의 숨겨진 본성이나 마음의 움직임이 은연중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대방의 몸짓에서 마음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행동거지에는 그 사람의 생활환경이나 일에 대한 자세가 나타난다. 예를 들면 문을 닫을 때 양손에 짐을 들고 있다고 해서 발로 문을 차서 닫는 사람이 있다면, 극히 단순한 한순간의 행위였지만 그 사람의 교양 없는 인품이 그대로 노출된 것이다. 사람의 첫인상이 맞는 경우도 많지만 만인이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겉보기와 다른 경우도 종종 있다. 차가운 사람으로 봤는데 예외로 인정이 많은 사람이 있기에, 선입견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면 큰 실패를 당하는 경우도 있다. “상대방의 인품은 몸짓이나 행동거지, 리듬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지만, 어디까지나 판단기준의 하나일 뿐이다.
최근 스타 방송인들의 퇴출로 항간에 물의를 빚고 있는데, 한나라당의원이 국감장에서 MC겸 개그맨 김구라 씨의 ‘퇴출’을 요구해 파문이 일고 있다. 정치가 불안하면 국민이 살기 힘들어지기 마련인데 왜 긁어 부스럼을 만들까? 더구나 우리나라국회의원들 노는 판세가 그 나라의 정치 꼴일진대, 오죽이나 뒤가 구리면 오직이빨 하나로 먹고사는 그 들에게서 입주등이를 몽땅 도려내려 드나 싶어 애달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서양 속담이 있다. 말인즉슨, 모세는 사람이 만약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을 때는 그 생명으로서 갚게 하고, 눈을 상하게 했을 때는 눈으로서 갚게 하고, 이를 다치게 했을 때는 이로써 갚게 하는 법을 만들었다. 예수는 법구에 비록 정해져 있다 하더라도 복수를 인정하지 않았다. 악한 자에게 맞서지 말라. 사람이 만약 너의 오른뺨을 치거든 왼쪽을 내놓아라, 했다.
이러한 예수의 박애정신을 실행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예수도 이것이 거의 불가능 하다는 것을 알면서 이렇게 가르친 것은 하나의 이상의 지표를 내세운 것이 아닐까?
사람은 예수의 자비를 온전히 실행은 못할망정, 접근하려는 노력은 이 사회를 평화롭게 하는데 힘이 될 것을 내다보았던 것이라 할 것이다. 사실 이 기독교의 정신은 서구사람들의 마음의 방식이 되었고, 많은 악에 대하여 브레이크 역할을 하게 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또 “악화가 양화를 구축 한다”는 말은 그레셤의 법칙인데 품질이 좋은 화폐와 나쁜 화폐가 동시에 유통하기 시작하면 품질이 좋은 화폐는 차츰 자취를 감춘다는 금융논의 원칙을 말함이다. 두 종류의 동일한 가치의100원짜리 은화가 은의 함량에 차이가난다면, 무거운 쪽은 양화이고, 가벼운 쪽은 악화이다.
사람들은 양화와 악화가 둘 있으면, 악화를 쓰고 양화는 수중에 둘 것이다. 이리하여 거래시장에서는 악화만 돌고 양화는 눈에 띄지 않게 된다. 세상사도 마찬가지다. 대통령과 국무총리 등 최고 고위직은 거의가 병력미필 자다. 반 똥 가리 국군통수권자가 온 똥 가리 4성 장군을 호령하는 나라가 우리나라일진대, 비유컨데 그레셤의 법칙은 「악인이 선인을 밀어내는 경우에도 가끔 쓰이고 있다.」
한마디로 정치가의 몸짓을 보면 그 인간성이 파악 되는 형상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