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좁은 문

작성일: 2009-11-03

“너희들은 남을 심판하지 말라. 심판 받지 않기 위해서로다. 내가 만든 저울에 나도 달릴 것이다. 어찌하여 형제 눈에 티를 보면서 자기 눈에 낀 삼눈을 보지 못하느냐? 보라, 제 눈이 삼눈이면서 어찌 형제를 보고 너희 눈의 티를 씻으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위선자여, 먼저 자기 눈에서 삼눈을 거두도록 하라. 그러면 분명히 보이고 형제의 눈의 티도 씻어 줄 수 있으리라. 성스러운 것을 개에게 주지 말라. 또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필경은 발로 짓밟고 돌아서서는 그대들을 물어뜯으리라.”
평이하고도 짧은 글자들 속에 폐부를 뚫는 날카로움과 깊은 뜻을 함축한 이들 유명한 명언들은 계속된다. “구하라. 그러면 얻으리라. 찾으라. 그러면 발견하리라.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열리리라. 오로지 구하는 것은 없고, 찾는 것은 발견되고, 문을 두드릴 때는 열리노라. 너희들 중에 누가 그 자식이 빵을 바라는데 도를 주며, 생선을 바라는데 뱀을 줄 것인가. 이리하여 너희들은 악한자라도 좋은 선물을 그 자식에게 주는 것을 알리라.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들의 아버지가 바라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지 않을 것인가? 그러므로 오로지 남에게 바라고 싶은 일은 남에게도 자신이 그렇게 하라.”
지드의 유명한 소설 《좁은 문》은 마태복음의 ‘좁은 문’에서 그 표제를 딴것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 또 ‘내가 죽은 뒤에 대 홍수가 나던 말든’이라는 프랑스 왕 루이15세가했다고 전한다. ‘나 죽은 뒤 죽이 되 든 밥이 되 든’ 식의 말인데, 일국의 왕이 이런 말을 했다는 것이 이 말의 무게를 달리하고 있다.
루이15세 치하의 18세기 후반의 프랑스는 이미 장차 일어날 대 혁명의 검은 구름이 짙어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오를레앙 공 필리프의 섭정에 끌려 다니다 시피 했고, 나중에는 퐁피두르 등의 여인들의 농락으로 국정이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그 무능함은 쓰러져가는 봉건제도 말기와 비슷했던 것이다.
한편 자유에 눈뜨기 시작한 민중과 약점을 잡고 침입해오는 외국 세력이 부르봉 왕조의 서까래 기둥을 뒤 흔들었다. 어느 날 밤, 왕은 애첩 퐁파두르에게 그의 심중을 솔직히 말하기를, “내 눈이 검은 동안은 이 상태가 계속될 것이고, 태자가 어떻게 잘 수습하겠지만 내가 죽은 뒤에야 대홍수가 나든 말든!”이라고 속삭였다고 한다.
그런데 어떤 역사가에 의하면, 왕이 한말이 아니라 애첩 퐁파두르가 한 말로 되어있다. 즉 이 말을 할 때 그 자리에 화가 라드올이 있었는데, 드올의 증언은 퐁파두르 부인이 프랑스군이 독일군에게 패배를 당한 데 대해서 루이15세가 침울해 있는 것을 위로하기 위해서 이 말을 입에 올렸다고 한다.
오늘에 되살리는 고전의 지혜 서양 고사 성어를 왜 들먹이느냐 함은 헌재의 미디어법 판결을 보며 위정자들의 하늘보고 침을 뱉는 맹랑한 행위에 토를 달고자 함이다. 헌재는, 투표과정의 위법성은 인정하나, 가결선포 무효에 대한 심판기각, 즉, “투표에 문제가 있다. 법안자체의 해석은 입법부의 권리이므로, 입법부에서 재 논의하라”이다. 오마이뉴스외- “헌재 놀리라면 한일합병도 유효”라고 비아 냥 거렸나하면, “이완용이 그대들보다 더 나쁜 짓을 했는가?” “미디어법 스스로 사법부책무포기”, “눈치의 달인 헌법재판소 언론법 위법이지만 유효”…
“학자들, 법시행하면 ‘여론공정성 심각하게 파괴’ ‘컨닝은 위법이지만 답안지는 유효하다…” “헌재미디어법 결정에 비난 목소리 ‘봇물” 비겁한 헌재, 앙몽 재연, 헌재 스스로 추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