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가는대로> 광복회 유적지 견학
작성일: 2010-01-04
독립유공자단체 광복회경남북부 회원14명은 금월 22~24일간, 시대의 여명기를 이끈 선각자이신 우국 ·애국지사의 발자취를 더듬어 헤아려 배우는 감사한 기회를 거창군 군수와 관계담당자, 군 의회 의장 의원의 협조로 이뤄졌다.
22일 09시 종합사회복지관 마당에서거창관광 차편으로 군수님과 관계자들의 환송을 받으며 강원도 홍천 무궁화사랑 한서 남궁억선생기념관을 향해 상쾌한 출발을 했다.
평균연령 75세인 노령인지라 노환으로 불참 누워계신 어른들에게는 송구스럽기 그지없다. 그러나 마침 사납게 춥던 날씨마저 풀려 겨울날씨 치고는 나들이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춘천을 새로 난 길로 가니까 약 1시경에 호반의 도시 초입 공지천유원지에 도착 춘천닭갈비원조집에서 막국수에 닭갈비, 옥수수, 막걸리 한 사발의 맛은 환상적인 음식궁합이다. 커피와 빵 한조 각으로 이른 아침을 때우고 나선 때 늦은 점심 푸짐한 식단에 허리끈을 풀었다. 원행의 긴장과 시장기로 다물었든 입이 주기로 열리기 시작하니까 화목한 분위기담소의 톤이 점점 높아진다.
길도 옛날 갖지 않아 국도나 고속도로를 분간키 어렵게 길이 좋다. 산 간 벽촌 길도 굴을 뚫어서 해발고도를 낮추어 한계령같이 아슬아슬하던 길이 평지길이 되어 옛날 같이 오줌을 지리던 스릴과 낭만이 있는 그런 길은 일부러 찾기조차 어려워 졌다.
우리단체는 나이가 들어서가 아니라 처음부터 차속에서 노래하고 춤추지 않는 그런 불법문란행위를 하지 않는 것이 타와 다른 점이 국민가수 아리수기념 나훈아와 김용림의 환상적인 DVD를 보고 듣는 동안 홍천남궁억선생 기념관에 다 달았다.
기념관은 하늘과 뒷산을 배경으로 한 건물의 윤곽선이 너무나 멋지다. 대지가 넓어 넉넉하여 인색해 뵈지 않고 답답하지 않다.
대지가 넓다는 것은 군세가 약해 상대적으로 땅값이 싸다는 것을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잘난 후손이 많이 났거나 아니면 홍천군의 유지공무원의 안목이 높아 선각자를 알아서 모셨다고 보여 지는 것이다. 한서 남궁억선생은 서재필, 이상재 선생등과 독립협회를 창립했고 고종황제 영어 통역관, 황성신문 사장으로 선출되었으며, 필화로 2번이나 구속되었다.
대한협회보 발행 광동학우회를 조직하여 〈교육월보〉도 발간했다.
1918년 강원도 홍천의 모곡으로 내려가 교회와 모곡학교를 세우고 교육에 전념했다. 1933년 ‘반일 애국사상과 무궁화사건’ ‘십자가당사건’으로 구속되었다. 이듬해 형집행유예로 풀려났으나 학교는 폐쇄 되었다.
1933년 국민들의 민족정신을 일깨우기 위해 나라꽃으로 정한 무궁화를 전국적으로 퍼뜨려 이른바 ‘무궁화사건’을 일으켰다. 저서로 〈조선이야기〉〈동사략〉등이 있다.
우리의 웃음은 따뜻한 봄바람 / 봄바람만난 무궁화동산
우리의 눈물이 떨어질 때 마다 / 또다시 살아나는 이천만
빛나거라 삼천리 무궁화동산 / 잘 살아라 이천만의 고려 족
백화가 만발한 무궁화동산에 / 비밀리 노래하는 동무야
백천만 화초가 웃는 것 가치 / 즐거워하자 우리이천만…
무궁화동산이란 이 노래는 옥살이로 나빠진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홍천 고향으로 귀향한 남궁억이 노랫말을 지어 학생들에게 부르게 한 무궁화와 함께 시작한 커다란 애국운동으로 일제강점기 민족을 위한 정치, 교육활동에 헌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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