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창작무용 ‘애국가’

작성일: 2010-04-05

거창이 낳은 파리장서의 애국지사 면우 곽종석 선생의 증 손녀인 승연씨가 애국가를 상징하는 고전무용을 창작 시연하고 있어 가슴을 찡하게 한다.
나는 춤을 추는 사람이다. 그것도 전통춤이다. 그리 잘추는 편은 아니지만 서울의 이화여자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2년 정도 한국 무용을 배운 것이 전부다. 그것도 60이 넘은 나이에 시작했으니 남들에게 비해 비교적 늦게 시작한 편이다.
그래도 열심히 배웠고 지금은 열심히 추고 있다. 그리고 불러주는 곳이면 빠지지 않고 나름대로 목적의식을 갖고 열심히 추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에는 가끔 초대받아 춤을 추는 경우가 있다. 작난 2월 숭례문 화재 1주기 때에는 화재 현장에서 진혼무를 추기도 하였다.
이쯤 되면 “도대체 무슨 춤이야?”하고 궁금해 하실 것이다.
나는 하얀 치마저고리를 입고 태극기를 가슴과 등에 달고 애국가 음악에 맞춰 착장무용 ‘애국가’를 춘다. 지면이라 직접 보여드릴 수 없어 아쉬움이 있지만 직접 창작한 춤이다.
이 춤을 만든이유는 내가 1919년 유림들이 파리강화회의에 한국독립을 호소하는 장문의 서한을 보낸 ‘파리장서사건’의 대표였던 곽종석(郭鍾錫)선생의 증손녀이기 때문일 것이다. 또 하나의 이유로는 독립운동가의 후손이요 곽종석선생의 증손녀로서 이 나라, 이 땅에 살면서 나라사랑하는 정신을 전파할 수 있는 길을 여러모로 찾고자 창작무용 ‘애국가를 만들게 되었던 동기라고도 했다.
그렇게 화려하지도 않고 어떻게 보면 지극히 소박한 춤이지만 애국가 반주에 맞춰 출 때면, 증조부의 독립의 뜻을 대신 이루는 듯 한 느낌이 들어 후손으로서 조금이나마 빚을 감는 것 같은 마음에서 다소 위안이 된다.
지난 2007년 현충일로 기억한다. 이 애국가 창작무용을 52회 현충일 기념일에 독립기념관 겨레의 집에서 관람객 앞에서 선보였다. 이날역시 애국가 반주에 맞춰서 무용을 했는데, 반응은 좋았던 것 같았다. 감동적이라는 평도 들었다. 지금도 그때의 감격을 잊지 못한다. 독립운동가의 후손이 독립기념관에 와서 나라사랑하는 마음으로 애국가 창작무용을 했다는 것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요, 감격의 순간이었다. 그것도 애국선열의 숭고한 나라사랑 정신을 추모하는 현충일에…
나는 독립기념관에서 느꼈던 감격을 원동력으로 해서 앞으로 힘이 되는 한 70이건, 80이건 창작무용‘애국가’를 계속할 것이다. 어디서 부르던 달려가서 할 것이다. 이 무용이 전국으로 퍼져나가 우리국민 모두가 태극기를 사랑하고 이 나라, 이 민족을 사랑하는 국민으로 하나로 똘똘 뭉치는 그날까지 말이다.
다시 말해서 그 무용의 주제는 “나라사랑하신 그리운 님 에게 바치는 춤사위요, 나라 없는 외로움 고통 몸은 찢기어 만신창이가 되어도 나라의 독립을 위하여 그 굳은 절개님이시여 편히 쉬소서… 동작. 애국선열의 고뇌 소나무에 비유 송죽같은 굳은 마음, 독립을 염원하는 기다림, 님이시여! 그립습니다. 사랑합니다. 동작 희망의 광복을 맞이하는 서광이 비침을 가슴에 품고 가다리는 마음의 동작. 광복을 맞이한 우리나라가 세계의 반열에 우뚝 서는 기대와 희망의 징조를 비유적으로 나타낸 춤사위이다. 곽 여사는 나와는 윗대에 혼인관계로 척분인 査家(사가)간있는가 하면, 어릴 적에 같은 마을에서 자란 사이이다. 여사의 글을 옮겨 적으면서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짐은 인지상정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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