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곤란을 행복으로 바꾼다

작성일: 2010-04-22

곤란이 당신을 불행하게 할 수는 없다.
곤란이 인간을 불행하게 하는 것으로 정해져 있는 것이라면, 고산등반이나 프로 스포츠는 인간을 불행하게 하는 것으로 정해져 있어야 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기꺼이 등산을 즐기고 스키나 스케이트에 열의를 내는 것은 그 곤란을 즐거운 마음으로 극복하기 때문이다.
즐거움은 오히려 ‘곤란이 없다’는 것이 아니고 ‘곤란을 극복하는 쾌감’에서 오는 것이다. 즉 ‘곤란’ 그 자체가 인간을 불행하게 하는 것은 아니고, 곤란에 대해서 그 사람이 어떠한 마음의 태도로 그 곤란에 맞서느냐에 의해 곤란이 쾌감으로도 불행으로도 고통으로도 변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곤란에 직면해서 오히려 쾌감을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은가? ‘밀려오는 곤란’ 에게 주동 성을 가지게 하고 자기가 그것을 받고 있다고 하는 것 같은 소극적인 수동적 태도로는 자신이 불행할 뿐이므로, 곤란에 의해 깔아뭉개질 뿐이다. 무엇이든 주동자로 되는 자가 승리자다. 곤란이 자신에게 밀려오기 전에 자신이 먼저 곤란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주동자가 돼서 밀어붙이는 것이 좋다고 했다. -『생활의 지혜 365장』중에서-
인생은 전진이냐 후퇴냐, 진보냐 퇴보냐의 어느 쪽이다. 전진하지 않는 자는 후퇴하고, 진보하지 않는 자는 퇴보하는 것이다. 가만히 앉아있는 자는 능력이 줄어들지는 않더라도 다른 사람이 진보하고 있으니까 자기는 역시 전체에 비하면 낙오한 것이 된다.
인간은 끊임없이 ‘인류에게 헌신 한다’ 고 하는 높은 목표를 내걸고 제일보를 착실히 내딛는다면 일조의 눈에 보이지 않는 거룩한 분위기가 그 사람을 따라다녀서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되는 것이다.
이기주의만으로 일하고 있는 사람과 일류에게 헌신하기 위해서 일하고 있는 사람사이에는 말 할 수 없는 불가사의 한 매력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와 함께 그 같은 행하는 일에 비하면 특출한 우수함을 갖추고 있는 것이어서, 자연히 그 사람의 전도가 밝게 되고 지위는 올라가게 되는 것이다.
걱정하거나 두려워하는 마음은 머리카락을 하루 밤 사이에 하얗게 할 수가 있다. 영국의 찰스1세와 같은 사람이 그 유명한 실례이다.
전쟁터에서 살아서 돌아온 사람 중에는 몰라볼 만큼 머리가 하얗게 된 사람이 많다. 공포의 염은 혈액 중에 유해성의 유황의 화합물을 만들어서 두발의 색소를 파괴한다고 과학자는 말하고 있다.
신체를 병자로 만들만큼은 아닌 적은 공포가 두발에는 강한 영향을 주어 하얗게 되거나 머리카락이 빠져서 대머리가 되게도 한다. 그러나 결코 겁내거나 걱정해서는 안 된다.
병은 인간의 마음의 침체에서 오는 것이니까 그 침체를 없애버리면 나아지는 것이다. 마음의 침체는 화가 나거나, 불행하거나, 슬퍼하거나 해도 일어지만, 지나치게 한가해서 게으름을 피우고 있어도 일어난다.
우리 집에서 일하던 어른이 내게 하는 말이 있다. “돈 한 푼 벌지 못하면서 무슨 일로 그렇게 바쁜지, 아프고 싶어도 앓고 있을 틈이 없는 사람이라고 하면서, 10년 넘게 겪어봐도 자기 머리로는 답이 안 나오는 연구대상이라고 했다.”
오랫동안 중풍으로 움직이지 못하고 자리에 누어있던 사람이 대풍수해를 당했다. 아내가 외출한 사이에 집에도 홍수가 밀려와 방바닥에 물이고였다. 죽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서 돌연히 일어났다. 일어난 것만이 아니라 물에 젖어서는 안 될 귀중품을 2층으로 옮기도 했다.
‘바쁘게 도망가지 않으면 죽게 된다.’ 는 것도 ‘앓고 있을 틈이 없다’고 하는 것과 같아서 병이 낫게 되고, 앉은뱅이가 일어서는 것과 같은 곤란을 행복으로 바꾸는 이치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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