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가는대로> 알아야 면장

작성일: 2010-05-14

철은 계절을 말하고 한해 가운데서 어떤 일을 하기에 좋은 때를 제철이라고 한다.
흔히 철(계절)을 모르는 사람을 철부지라고 한다. 어린아이도 어른스럽게 행동하면 ‘철이 들었다고 하고’ 어른일 지라도 어벙하게 행동하면 ‘언제 철 좀 들래’라고 한다.
시골양계장에 가면 계사에는 밤 낮 없이 24시간 전등불을 켜놓는다. 밤을 낮으로 착각하고 먹이를 쪼아 알을 많이 생산하기 위한 나쁜 심보가 닭이 밤낮을 분간하지 못하고 계절의 감각을 잃어 알 놓는 기계를 만드는 것이다. 그 계란을 사먹기는 하지만 자연산에 비 할 바가 되겠는가.
이런 것이 철을 모르는 철부지의 한 예다. 또 방범가로등을 달아달라고 요청했더니 이웃에 양봉을 치는 집이 있으면 동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밤에 불이 밝으면 벌 또한 밤낮을 가리지 못하고 나와서 얼어 죽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세속에 ‘알아야 면장을 하지’라는 말이 있다. 지식 나부랭이라도 좀 있어야 면장(面長)을 한다는 말인데 그러나 그 말의 원 뜻은 전혀 다르다.
알아야 면장(面葬)즉 죽음을 면한다는 뜻이다. 년 전에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에 지진해일이 몇 십 미터 높이로 덮쳤다. 그 일을 예상했다면 누가 거기에 갔겠는가? 아무것도 모르는 관광객은 돈을 주고 그곳으로 죽으러 간 꼴이 됐다.
이야기인즉, 해일의 조짐은 한 순간 들어 왔던 물이 썰물처럼 쫙 빠져 나가는데, 물이 빠진 자리에 고기가 지천이라 고기를 잡으려고 사람들이 몰려들었을 때 빠져나갔던 집채 같은 큰물이 수 십 미터의 높이로 다시 밀려들어와 모든 것을 싹 쓰러가 버렸다.
그 와중에서 짐승들은 울부짖고, 묶어놓은 코끼리들은 알 수없는 괴성을 지르며, 이상한 행동을 하며 높은 지대로 다 달아났는데, 물이 찬 곳 바로 그 위쪽으로 갔다고 하니 동물이 오히려 인간들보다 더 초자연적예지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곳에 있으면 죽는다는 것을 모르는 인간들은 죽었고, 그곳에 있으면 죽는 것을 아는 동물들은 살아났다. 이러하듯이 모르면 죽게 되고, 알면 죽음을 면한다는 것이다.
지구의 변화기이고 대환절기인 지금, 우리가 때를 알아야 되는 이유중 하나가 철을 알아야 살 수가 있는 것이다. 알아야 면장(面葬)이라 죽음을 면한다.
우주만유의 모든 생명들은 제 모습을 되찾을 때가 바로 가을이다.
봄에 노란 콩을 심으면 가을에 노란 콩이 열리고 까만 콩을 심으면, 까만 콩이 열린다. 그러나 봄에는 푸른 싹 만 보이고 그것이 파란 콩인지 노란 콩인지 까만 콩인지 알 수가 없다.
여름도 마찬가지로 알 수가 없다. 줄기와 이파리를 봐도 전혀 알 수가 없다. 또 그 철에는 모르 것이 천지의 이치이다. 그러나 가을이 되면 까만 콩 씨는 까만 콩을 맺고 노란 콩 씨는 노란 콩을 맺는다.
선천의 역사 역시도 그와 똑같아 봄에 씨 뿌려 싹이 터도 싹만 보고는 뿌리의 씨앗이 무엇인지를 모른다. 선천에 우리선조들이 살아왔던 뿌리역사를 놓고도 이놈은 이놈대로 저놈은 저놈대로 자기들 것이라 주장하는 것이, 똥인가 된장인가 찍어 먹어 봐야 알란가, 이파리를 보고는 횐지 검은지를 알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우주의 가을을 맞이하는 지금 이때 우리의 본바탕을 찾아야 한다.
우리역사를 되찾아야 한다. 우리 정신을 찾아야 한다. 내가진정 누구인지를 알아야 하고 나의 근원이 무엇인지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내 조상, 내 뿌리를 찾는 것이 우리 모두의 사명이고, 무리모두의 의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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