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울음 터
작성일: 2010-06-10
마치 전장을 방불케 했던 6.2지방선거,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역겹기 짝이 없었다. 속담에 “집안 꼴이 안 되려면 구정물통에 호박꼭지 춤을 춘다”라는 말과 같이, 公人이 되어서는 안 될 모리배들이 눈썹하나 까딱 않고 설치는 꼬락서니가 가관이라 선거가 빨리 끝났으면 했는데 시간이 더디 갔다. 당선자는 기쁨의 울음이 저절로 터질 것이고, 낙선자는 가슴에 사무치는 통곡의 울음을 흘리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좋고 나쁨의 갈림에서 좋아서 울고 슬퍼서 우는 울음 터에 대한 발췌다.
오직 슬플 때에만 우는 줄 알뿐 칠정 모두가 울수 있다는 것은 모르는 것 같다. ①기쁨(憙희) ②노여움(怒노) ③슬픔(哀애)이 사무처도 울게 되고 ④즐거움(樂락) ⑤사랑함(愛애) ⑥미움(惡오) ⑦욕심(欲욕)이 사무처도 울게 된다.
왜냐하면 근심으로 답답한 심정을 푸는 데에는 소리보다 더 빠른 효과가 없는 것이다. 울음이란 천지간에 있어서 우레와도 같은 것이라 지극한정이 발현되어 나오는 것이 절로 이치에 딱 맞아 떨어지면 울음이 우러나오게 되게되는 것이다. 때문에 상을 당하면 애고·어이 따위로 억지로 울부짖으면서도 참된 칠정에서 우러나오는 지극하고 진실 된 소리는 참고 억누르다 보니까 처처히 쌓이고 서리고 엉긴 감회 펼치지 못한 칠정이 극에 이르면 모두 울음이 되어 나온다는 박지원의 열하일기역설의 호곡장(號哭場)을 필자가 쉬운 말로 울음 터라 했다.
‘이제 요동벌판을 눈앞에 두고 있네. 여기서부터 산해관까지 1,200리 사방 한 점 산도 없이 하늘 끝과 땅 끝이 맞닿아서 아교풀로 붙인 듯, 실로 꿰맨 듯한데, 예나 지금이나 비와 구름만이 아득할 뿐이지. 어떤가? 이 또한 한바탕 울어볼만한 곳이 아니겠는가!’라 했다. 요동 벌에 첫발을 내 디디면서 끝없이 펼쳐진 벌판을 보며 내 지른 일성은 “좋은 울음 터다. 크게 한바탕 울어볼만 하구나” 바로 그런 존재론 적 울림의 표현이다. 그는 청의 거대한 문명 앞에서 전율하였다. 여기서 울음이란 이 전율의 신체적 표현이자 청문명의 기억장치 안으로 들어가는 통과제의의 일종이다. 금강산 비로봉 꼭대기에 올라 가 동해를 바라보며 한바탕 울어볼만하고, 장연의 금 모래밭을 거닐면서 한바탕 울어볼 하이. 다시 말하자면 갓난아기가 슬퍼서 우는 것이 아니라 태어남의 감동과 환희의 표현의 일성이 울음밖에 없기 때문에 사나운 짐승이 울부짖듯 크게 내지르는 것이리라.
안보에 실패한 정부서해 천안함 기습침몰해전만 봐도 적의 작은 배가 바다의 휴전을 물귀신같이 넘어와 군함을 반 토막 내 침몰시켰다. 휴전선경계 초소장 겸 관측장교출신의 기자 입장에서경계태세의 소홀로 귀중한 부하장병의 생명과 나라의 재산에 큰 손실을 끼친 함장은 배와 운명을 같이했어야했고, 아니면 전과(戰果)를 물어 엄한 군법을 적용이등병강등과 동시에 입창시켜 조사를 받았어야 했다. 동시에 해군참모총장도 엄중한 군율을 적용 문책 전역시켜야 옳았다. 그런 본보기를 보였더라면 해이됐던 군기도 바로서고 국민들 또한 통수권자를 믿고 일치단결했을 터인 즉, 극 처방을 놓친 국가원수의 총 한번 만 저보지 않은 엉성한 사격자세의 TV방영을 시청한, 전쟁을 겪은 세대의 입장에서는 실망이 컸을 줄 안다.
세종시와 4대강 사업은 차치물론하더라도, 명령에 죽고 사는 군을 다루는 강약의 페이스 조종의 실패를 보며 국민의 다수가 6.2지방선거에서 믿을 수 없다. 못 믿겠다, 꾀꼬리로 중간평가 같은 민심이 확 돎을 감히 추측하게 된다. 애고, 이 어찌 통탄하고 통곡하지 않을 수가 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