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사장취임의 변

작성일: 2010-07-01

언론기관은 그 나라의 ‘보도의 잣대’로서 방향타 적 역할을 해야 하고, 애독자인 온 국민으로 부터 신뢰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KBS나 조 중 동처럼 권력에 빌붙어 한쪽으로 치우쳐 더부살이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나의 소신이자경서신문 사장됨의 辨(변)이라할까 지론이다.
두 손바닥만큼의 주어진 작은 지면에 자전적 글을 적자하니까, 왠지 겸연쩍어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나로 말하면 유년시절골목대장 이었기 때문인지 뭣이든지 간섭하고 앞장서기를 좋아하는 의협심이 강한 사내아이로 컸다. 머리가 좀 돌아가는 우두머리 기질이 돋보였든가, 남들이 정치가나장군감이라고들 했는데, 나 역시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것 같다.
그래서 초등학교전교어린이회장을 시작으로 중학교규율부와 고등학교관악대(brassband)악장 자치위원회자치회장, 서울명문대학단과대학 학생회회장, 군대 초급장교전역 그 단과대학동창회회회장을 지냈고, 총동창회 임원을 비 롯 대기업 중견사원, 유수한 대학원을 거쳐 더 높은 수준의사회로 진출하기위한 도약의 발판인 학업내지 병역 직업의 이력기반을 단단히 다지고 쌓았었다.
그런데 명령에 죽고 사는 군대라는 특수조직생활에서, 복무규율을 깨는 치명적 흠인 하극상탈선행위로, 장교가 이등병이 될 번했던, 장군감은커녕 감히 부끄러운 과거를 토로한다. 전역후일반사회조직생활을 하면서 점차 더 높게 그 징후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주어진 과제는 거침없이 잘 추스르고, 아랫사람이나 가까운 옆(Staff)과의 소통관계는 원만한데, 윗선(Line)과의 관계는 염소가 뿔로 치받듯, 좋게 말해 동키호테 적『투사 : (사회운동 따위에서 앞장서서 투쟁하는 사람)』기질이 있다는 것을 그 때 비로소 느끼어 알게 됐다. 아마 이것은 혈통이 아닐까 싶다.
사회적으로 이루 말할 수 없이 군색하던 군사혁명 직후, 그러나 그 때 학생운동을 한 나의 입장은 달랐다. 뭣이든지 내 입맛대로 할 수 있는 바탕이 열려 있었다. 과장하지 않아도 ‘군대면 군대’ ‘청치면 정치’ ‘기업경영이면 경영’에 들어서는 기반토대가 조성되어 있음을 스스로 외면 멀리했다.
그 일에 대하여, 천지조화로 신명(천지의 신령)이 도왔는지, 아니면 조상귀신이 떠다밀었는가는 모르겠으나, 나는 모든 주어진 좋은 기회를 박차고, ‘내 인생의 미래에 관한 한 적수공권 자력갱생을 고집했다.’
그것이 가문의 『龍剛公 先祖 遺訓』을 우연히 따른 격이 됐다, 그래서 명줄을 보존 늘그막에 돈 안 벌리는 신문사사장도 해본다.
사주팔자 따라 전두리에 “悖倫兒 破輪者를 경계하여, 앞장서지 말고 한걸음 뒤로 물러나 바보처럼 『苟命徒生(구차하게 나마목숨부지)』”하라는 유훈이다.
뒤돌아보건대 부와 공명을 버린, 면경 같이 맑고 한 점 티 없는 삶에 후회는 없다.
그러므로 『林扶陸의 붓 가는대로』의 요지경, 그 순탄치 않은 길을 한 발짝 내딛게 됐었나 보다.
물구나무서기로 세상을 거꾸로 바라보며, 아니면 바짓가랑이 사이로 하늘을 치켜다보는 한 많은 인생역정인지도 모르겠다.
거듭하여, 신작로 같은 순경(모든 일이 순조로운 환경)에서 진창길 같은 역경(일이 순조롭지 않아 어렵게 된 처지나 환경)을 자청한 것이 지금의 내 꼴이나, 그냥깜냥대로 행복하다!!!
나물먹고 물마시고 팔을 베고 누웠어도 인생의 즐거움이 그 속에 있다면 부귀와 영화는 나에게 있어서는 뜬구름과 같은 것이라… 공자님말씀이시다. ≪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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