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겹경사
작성일: 2010-07-08
‘상’의 사전적 의미는 뛰어난 업적이나 잘한 행위를 칭찬하기 위하여 주는 증서나 돈이나 값어치 있는 물건이다. 표창은 어떤 일에 좋은 성과를 내었거나 훌륭한 행실을 한데 대하여 세상에 널리 알려 칭찬함이고, 또 그것에 대하여 명예로운 증서나 메달을 줌이다. 경사는 축하할만한 기쁜 일이고, 겹경사는 둘 이상 겹친 기쁜 일이라 했다.
지난달에 내게 작지만 기쁜 일이 겹치는 겹경사가 일어났다. 하지만 귀나 즐거울까 별로인 CEO라 체면치레가 걱정된다. 그러나 늘그막에 정열을 솥을 자리가 여럿 있다는 것 無智(무지) 나로선 행복하다.
화투나 카드 장기바둑 당구 등의 유회는 돈을 거는 도박성이 다분 수인 놀음놀이를 잘못해 재미없는 사람 축에 드는데다가, 더욱이 난초나 분재 수석 낚시마니아와는 거리가 멀다. 이야기가 옆길로 흘렀지만 그럼 무었을 어떻게 해서 행복을 추구할 것인가는 우선걸음을 걸으면서 흙을 밟고 자연과 어울려 사색(골똘히 생각이치를 따짐)을 하고, 또 안전상 차도를 피해 전용도로에서 자전거를 타거나 가벼운 산행을 권하고 싶다.
재물은 잃으면 다시 벌면 되지만, 사람으로 나서 병들어 하체가 부실하면 제구실 못하는 폐인이 된다. 잘 걸을 수 있다는 것이 건강하다는 증표요, ‘누운뱅이’가 되면 가족에게는 천덕꾸러기애물단지고, 나라에 累누를 끼치게 돼 만사끝장이다.
부귀공명을 내팽개친 지 오래이다. 헛된 욕심 부릴게 없는 내게 요즈음 건강과 더불어 작은 기쁜 일이 연이어 일어났다. 아마 이것은 호사다마라고 注意주의하라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어느 날 갑자기 대문중부회장·신문사 사장·국가보훈처장 상을 수상 하게 됨에 따라 기분이 좋은 것은 늙어가면서 아직 욕심을 다 버리지 못한 탓일 게다.
초등학교 이후 중·고등학교·대학에서 등록금면제 장학생을 해봤다. 그러나 상이나패와 메달과는 거리가 먼 내게 전혀 예상 밖의 일 들이 문득문득 찾아드니까 통뼈인 나도 웬일일까 싶어 찐한 마음이 가슴에 스민다.
감사장이나 상이나 패 같은 것은 닭 소보 듯 관심 밖이었고, 더욱이 감투에는 남의 일 같이 무심했었다.
이력에 남을 상을 난생처음 수상해 주신 국가보훈처장께 감사한다. 마음에서 울어나는 선행은 남이 모르게 해야 하고, “바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나님 말씀 성경은 가르치고 있다. 그럼에도 댓 가를 바라서 상이나 표창을 향한 실적을 쌓는 꾼들이 눈에 뜨인다. 몹쓸 세태를 탄식해야할까 왠지 석연치 않다.
굳이 나로 말 할 것 같으면 실적을 아금받게 챙기면 대통령 훈장을 타고도 남음이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군민상한 번 타 본적 없고, 근자에도 촌집판돈 천 여 만원을 그 복에 ‘무겁다, 실성했다’고 할까봐 이름 빌려 나누어서 좋은 일에 썼다.
선행공적은 ‘追頌추송’이라 해서 그 사람이 죽고난후에 그 공적을 칭송하는 것이다. 본인이 챙겨서 어거지상을 타는 것이라면 잘못돼도 한참 잘못 됐다. 하기야 문집도 사후 30년 후에 후학이 서간·문증·문적 등을 수습 학행을 기려 발간하는 것이 불문가지이다. 그런데 주변에 생전에 손수 문집을 내고, 기적 비를 自作자작하는 등 창피를 모르는 自畵自讚(자기가 한일을 스스로 자랑하는 일)이 비일비재 한 세태가 됐다. 내게 일어난 작지만 기쁜 일에 남의 말을 곁들여 쑥스럽고 면구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