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처음 본 뮤지컬
작성일: 2010-08-19
거창국제 연극제가 어느새 22년의 혈기왕성한 성년기에 들어섰다. 연극의 불모지에서 반목질시와 우여곡절의 시련을 딛고 분연히 일어나 명실상부 우리나라의 대표 국제연극제로 자리 잡은 지금 지역민보다 외지에서 더 알아주는 거창하면국제연극제로 통하는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뮤지컬에 대하여 5. 16 군사혁명주체세력이 정권을 잡자군부가 무지하지 않고 문화적인 안목이 높다는 것을 내외에 드날리고자 한 것이 “예그린악단”을 창단하여 즉 선무연예단 격의 나팔 수 역할을 시킨 것이라 짐작하게 된다. 그것이 향토적 색체의 뮤지컬 ‘콩쥐 팥쥐’ ‘견우직녀’ ‘에밀레종’ 등 고전소설 배비장전을 각색한 ‘살짜기 옵서예’라는 창작뮤지컬공연 등이 민중의 정서에 먹혀든, 예컨대 군중 문화사업 이었다.
나는 대학 졸업반 때 무리해서 광화문통 시민회관에서 난생처음 예그린악단공연喜歌劇(희가극) “살짜기 옵서예”를 구경했다. 맛갓 나는 민요소리, 사설, 자진가락에 넋을 잃었다. 그래서 영화과 방친구와 연거푸 두 번이나 용돈을 아껴서 봤다면 당시 어려운 형편으로선 실성한 사람 축에 든다.
극단 동랑 레퍼토리의 희가극 ‘콩쥐 팥 쥐’ 와 ‘장화홍련’전의 연극도 구경을 했다. 그때 뮤지컬이란 소리처음 들었고, 아마판소리에 율동과 신파를 더한 극이 창가극이고 유희를 섞으면 희가극의 악극이 되는 것으로 여겼다.
그런데 뮤지컬(musical)은 미국에서 발달시킨 악극으로, 뮤지컬코미디나 뮤지컬플레이를 종합하고, 그 위에 레비 쇼·스펙터클 따위의 요소를 가미하여, 큰 무대에서 상연하는 종합무대예술이 뮤지컬이란 것을 근자에 알았다. 요즘 유행하는 강렬하고 반복적인 리듬에 맞춰 흑인풍의 억양을 넣어 중얼대는 노래 랩뮤직(rap music) 또한 어쩌면 그 뿌리는 감히 우리의 ‘고전음악판소리복합장르의 갈래로 귀결될 것’만 같은데 황당하다 할 것인가?
또 1970년대 초 연극배우 추송웅(1941-1985)의 모노드라마(monodrama 한사람의 연극배우가 모든 배역을 혼자 맡아하는 연극) “빨간 피터의 고백”은 주인공 동물원 사육사 보조는 원숭이 우리의 미화작업에 참여하게 된다.
그 후 새로 “피터”라는 이름의 침팬지가 동물원에 들어오게 되는데, 보조사는 “피터”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정신착란 증세를 일으키게 된다. 어느 날 침팬지 “피터”의 몸으로 잠에서 깨어난 보조사는 동물원에서 살아가며 과거의 여인을 만나기도 하고 다양한 경험을 하다가 다시 인간으로 돌아오게 된다는 스토리의 일 인극이다.
연극배우 추송웅은 “화가들은 그림을 남기고, 작곡가들은 악보를 남기고, 작가들은 책을 남긴다. 그들의 그림과 악보와 책은 시간을 넘어서 그 안에 응축된 그들의 삶에 대한 통찰과 철학, 그리고 예술혼을 전달한다. 그러나 연극배우들은 작품을 남길 수가 없다”는 의미 있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나는 이 연극을 보려고 했으나 폭발적인 인기로 장사진을 이뤄 불행하게도 그 불굴의연극배우가 남긴 불후의 명작 삼일 창고극장공연 “ 빨간 피터의 고백”의 관람 기회를 노치고 말았다.
또 연극배우 김동훈(1939-1996)이란 명배우가 있다. 이 배우 역시 실험극장 에서“고도를 기다리며”라 하는 제목의 일인 극을 했다. 표를 사려는 관람객이 진을 치고 있어서 그 또한 애석하게도 구경할 기회를 놓쳤다. 나는 TV드라마에서 그 배우는 오직 잠만 자다 깨다 하는 단조롭고 싱거운 연기하나로 폭발적인 시청률을 올리는 그의 진면목을 봤다.
당시에 모던하고 클래식한 대중가요가수 패티 김이 뮤지컬 “살짜기 옵서예”의 기생 애랑 분장역의 다이내믹한 가창력이 소름 끼치는 놀라움이었다. 감히 토로하건대 만약에 연극배우 추송웅의《빨간 피터의 고백》과 김동훈의《고도를 기다리며》를 보았더라면 룸메이트 진수와 나는 어쩜 극작가가 되었거나 극단 주나 연극영화 행정연출가가 되어 한창 뜨는 거창국제연극제에 참여 한 것 같은 착각, 학창시절 꿈의 초시간여행선을 타고 행복한 공상의 날개를 펼쳐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