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광복회 회원 옥포대첩 사적지 답사

작성일: 2010-09-17

금년은 경술국치(강압으로 맺은 조약)100년이 되는 해이고,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기이기도 하다. 이홍기 거창군수는 지역에 거주하는 독립운동가 유족광복회 회원14명을 초청 8월26일에서28일까지(2박3일)간 사적지 답사여행을 하였다. 이에 감사와 아울러 유족들 또한 연세가 많은 어르신들이라 여간 조심스러운 행보가 아니었고, 이 여행조차 오래가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들어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첫날 통영에 가서 통영 케이블카를 탓 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전망대 까지 걸어서 올라가는 가파른 길의 바닥과 안전 손 스침 방부 목 울타리시설물이 멋지나, 눈에 설어 마치 외국에 온 기분이다. 올라가면서 일행 중 누가 아장아장 걸어가는 어린아이를 보고 손잡아 줄까 했더니 ‘뒷짐을 쥐면서 손이 없어졌다’고 했다. 싫다는 표현을 돌려서하는 요즘 아이들의 영악스러움에 깜짝 놀랐다.
전망대의 사방이 확 터진 남해 바다의 조망이 내륙산골사람들에게는 경이로운 풍경일 수밖에 없었고, 높이 올라 멀리 보려고 들 힘들여 오를만한 가치가 있었다.
한산 섬과 주변 크고 작은 섬들이 눈 아래 도열해 있다. 그 사이를 이순신장군은 왜적의 무적선단을 요오 오요 강아지새끼 부르듯이 먹이 감을 꾀어 들여 요절박살을 낸 한산대첩의 격전장! 그 옛날 왜구의 신음소리 간곳없고, 다도해 해상공원 정오의 햇살만 뜨겁게 내리 쬔다. 시설물풍차가 내 눈에는 낱 설어 옥에 티로 영 아니었다. 우리정서와 동떨어진 시설은 양복입고 갓 쓴 격이라 거부감이 났다. 통영시청 관광부서의 연구과제로서 우리전통양식 건물이 주위 경관과 한결 어울리고 고풍스러움을 풍길 것 같았다.
통영어시장에서 싱싱한 활어 회 점심을 먹고, 거제도로가서 6. 25 동란의 산물인 살아있는 증표 포로수용소 기념관을 견학했다. 원형은 거의 사라졌고 부분적으로 남은 건물을 이용 당시의 광경을 사진이나 모형으로 축소 재현하여 파란만장 했던 옛날 일들을 파노라마로 한눈에 들어오게 해주는 전시관 이었다. 이어신선대, 바람의 언덕, 옥포대첩 기념관을 관람했다. 사당은 앉은자리가 풍수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좌청룡 우백호가 감싸고 전면이 바다인 생이지지로 볼 때 격에 맞는 명당길지(좋은 터)에 이순신 장군의 넋(혼백)을 잘 모시어 현창하는 거제시가 한결 우러러 돋보였다. 자료전시관에는 한눈에 그 옛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자료가 잘 정리 되어있었으나 못내 아쉬운 것은 거북선의 모형자료가 허술했다는 점이다. 거기에는 예산문제가 따르겠지만, 거제에는 세계적인대우와 삼성 조선소는 자존심도 없는가?
이 회사들 연구소에서라도 거북선은 철저히 연구 복원 되어야 할 숙제인 동시에 세계최초의 철갑선은 조선소의 프라이드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또 눈에 뛰는 것은 이순신 장군의 전법의 모형도 학익진전법은 세계 해군 사에서 4대해전의 하나가 한산도 대첩이다. 학익진 전법은 학이 날개를 펼친 것 같은 형태로 일시에 북을 울리며 호각을 불며 뱃길을 돌려 적선을 포위 섬멸하는 전접이다.
일본해군의 야마모토 이소쿠 총사령관은 태평양전쟁당시 러일전쟁에서 학익진 전법을 써서 승리하여 공을 세웠다고 하는데, 전사의 문헌 기록은 아마 일본해군의 극비문서일터, 구전으로 전해지고 있다.
조선시대에 왜구를 피해 거제에서 거창남하면 아주동네로 이주해 왔다는 전설의 동네이름, 거제 아주동에 있는 파리장서 애국지사기념비에 가서 참배(추모)하였다. 내일 일정이 빡빡하고 생각보다 통영과 거제간의 거리가 멀고 연신 바다를 볼 수 있는 해안도로를 끼고 달리니까 볼거리가 많아 피로가 덜하지만, 장시간 버스여행은 약간 힘들다. 내일이동시간을 줄이기 위하여 통영으로 돌아와 리베르호텔에 서 하루를 묵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