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광복회 순천만 낙안읍성 여행

작성일: 2010-10-21

당초여정은 농사일에 별로 지장을 받지 않게 여러 달 전에 잡았다.“재수 없는 사람 가루 팔러 가면 회오리바람 분다”는 격언처럼 8월 27일 새벽에 출발 섬진강 휴게소에서 간단히 요기를 하고 진도대교로가 이순신장군이 명랑대첩에서 거북선13척으로 왜적함대133척을 섬멸한격전장 울돌목에서 거북선을 타고 우수영관으로 가는 남도역사기행이 예정코스였다.
태풍이 멀리서오지만 경로가 그쪽이라 새벽에 급히 어르신들과 의논하여 순천만 생태공원 쪽으로 일정변경을 했다.
곡성 파리장서 기념비에 추모하러 가다가 비도오고 길이경사가 높고 미끄러워 진입이 어렵겠다는 군청관계자의 조언에 따라 목적지 부근에서 차를 돌리어 무리를 피했다. 아침을 설친 일행은 곡성에서 푸짐하게 점심 식사를 하고 다음 행선지 낙안 읍성으로 향했다.
낙안읍성은 전쟁이 나면 피아를 막론하고 나드는 길목만 조이면 꼼짝달싹 할 수없는 함지땅(盆地)이였다. 그 안에 왜 읍성을 쌓지 않으면 안 되었을까를 생각해 봤다.
아마 순천만바다를 통해 왜구가 끊임없이 처 들어와 얼마나 많은 해코지를 했으면, 십 오리가 넘는 읍성을 쌓았을까 에 대한 역사적 배경을 설명해주는 작은 책자가 없다. 왜구의 노략질에 대한 역사에 관대 한 순천시의 허술한 역사관을 지적하여 딴죽을 건다.
관아와 주요민속자료와 전례토속적인 민속경관이 잘 보존되어 있고, 세시풍속과 전통생활문화를 잘 지키면서 성안에 마을을 이뤄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민속마을 자기 집에서 주막을 하는 집에 들렀는데 동동주가 토속적인 맛이 풍기지 않아 주막 분위기와 술맛의 조화가 아쉬웠다. 성곽, 동헌, 낙민루, 낙안객사, 임경업장군비각, 마을 등의 보존상태가 좋았으나, 주민의 말에 의하면 초가지붕을 매년 이자면 이엉을 엮는 사람이 점점 줄어서 일손이 턱없이 부족해 보존도 좋지만 성가신 일이라고 했다.
동편제의 대가 ‘아기명창’으로 명성 얻어 전라감사에게 참봉벼슬을, 고종황제로부터 사헌부 정6품 감찰을 제수 받은 국창 송만갑의 가옥이 보존되어 그의 소리에 대한 업적과 얼을 기리는 산교육의 장이 되고 있었다.
또 가야금병창의 최고봉 오태석명인은 송만갑선생으로부터 소리를 배우고가야금을 판소리 창극에서도 남다른 재주로 가야금병창을 국악의 한 장르로 정립하여 가야금병창의 최고봉으로서 현재 낙안읍성에 그의 생가가 그대로 보존되어 가야금병창의 전수자들이 맥을 이어가고 있다. 또 가야금 병창인 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어 선생의 업적과 정신을 선양하는데 훌륭한 문화유산이 되고 있다.
서둘러 순천만 생태공원으로 갔다. 조금으로 바다물이 빠지는 간조 때라 갈대밭사이로 트인 배 길로 갯벌을 한 바퀴 거북선을 타고 나가 바다를 돌아보는 기회를 물때가 안 맞아 놓쳤다.
갈대밭 풍경이야 봄에 새순이 돋는 푸름의 싱싱함이나 늦은 가을 갈대꽃이 바람에 흩날리는 갯가의 싱그러운 광경과는 다르게 칙칙한 풍경이라 못내 아쉽다.
요즈음 어디를 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관광객 유치에 노력하는 것이 눈에 뜨이고 편의시설들이 참 좋다. 중국에서 아마2층 버스를 배에 실고 온 관광객과 마주쳤는데, 할 말은 아니나 중국하면 열악한 화장실과 비유돼 더럽다는 맘에 낮춰보게 됨은 인지상정인가 싶다.
우리나라의 화장실문화가 엄청 좋게 바뀌어 어디를 가나화장지가 있고 깨끗해서 중국 촌사람들 좌변기비대에서 세척 물 나오는 것을 보고 놀라 자빠질까봐 걱정된다.
오늘따라 비를 피해 다닌 격이 돼 스케줄조정을 너무 잘했다는 생각을 하며 해질녘 갯가의 갈대밭풍광 순천만의 별미 갯벌 짱뚱어 국에 소주잔을 곁들이는 아쉬움을 남긴 채 정읍시로 달려 저물어서야 궁전호텔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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