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우탁 정도전 가문의 비와
작성일: 2010-11-18
禹倬(우탁)은 성리학을 처음 받아들인 안향의 제자, 경사(經史)에 통달하고 역학에 조예가 깊었다.
동쪽나라의 역학에 뛰어난 인물이라 해 서 역동(易東)으로 아호를 작명하곤 고려 충정왕 때 감찰규정이란 여론을 수집하고 풍속을 교정하고 관리들을 규찰하는 정6품 벼슬을 지냈고, 최초의 우리말 시조인 탄로가(嘆老歌)를 지은 우리국문학사에 기념비적인 인물이기도하다.
父王후궁인 숙창원비를 범하자 白衣에 도끼를 들고 거적자리를 메곤, 왕궁으로 입궐 持斧上疏(지부상소) 했다는 대범한 인물이다. 상소를 들어주든지 아니면 도끼로 자신의 목을 치란 뜻으로 태조실록엔 鄭道傳(정도전)가계의 출생에 얽힌 비화이다. 봉화현에 사는 정운경이라는 사내가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가던 중 단양을 지나는데 놋날같은 비가 쏘다져 황급히 가까운 원두막으로 피신했다. 그런데 침침한 원두막엔 종년이 세상모르고 자고 있었다.
과객은 성욕이 발동하여 계집종을 범하였다. 그 계집이 담양우씨 집안의 노비였다. 마냥 떠나려는 사내의 팔소매를 부여잡고어디에 사는 누구냐고 물었다. 봉화에 사는 정씨라는 말만 남기고 떠나갔다.
그로인해 임신된 아이가 우씨 집안의 하녀사이에서 태어난 천민신분으로 세월이 흘러 그 애가 다섯 살 되던 해 길에서 놀던 아이가 집 앞을 지나가는 나그네를 보곤 쏜살같이 집으로 들어가 어미를 불렀다.
맨발로 쫓아나가 보니 봉화에 사는 정씨였다. 총기 있던 아이가 이심전심으로 제 애비를 알아본 것이다. 다섯 살 바기 아들 지기에 종년이 샛서방을 만나 살림을 꾸리게 되었고, 오다가다 길에서 만났다하여 도전(道傳)이라는 이름이 붇게 되었다.
정도전의 어머니는 문벌이 좋은 禹延(우연)과 첩인 金씨 부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런데 문제는 김씨부인의 어미가 노비였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정도전은 노비의 외 증손자 인 셈이다.
고려시대 관행에 따르면 아버지가 양반이라도, 어머니가 노비신분이면, 종모법 원칙에 따라 노비 즉 천시를 받았다. 정도전(1342-1398)은 우탁이 죽은 해에 태어났다.
그 땐 첩의 자식을 서출(庶出, 庶生, 妾出, 側出,서얼, 逸名, 椒林)등 비어가 이렇게 많고, 한 다리 짧다고 하여 천대시 했다. 그래서 정도전이 우씨가문의 종 몸에서 태어났다고 우씨가문에서 조롱받았고, 반대로 우씨 가문을 가리켜 왕이 부왕의 후궁을 범했다하여 양대 가문이 세력 다툼했다는 비근한 예는 조선시대이후 흔한 비사로 남아 홍길동·허준 등의 출생에 얽힌 비화가 비일비재하였다.
실예로 원학동(미리면, 북상면) 에선 林씨와 愼씨간의 세도 세력다툼도 그런 뿌리 깊은 양반과 토호의 폐해가 시대상 단면으로 봐야 할 것 같다.
위와 같은 맥락으로 지난주 드라마 전문케이블TV에서 “成均館 스캔들”이라는 일종의사회풍자극에 笑劇(소극, 황당무계한 코미디)을 가미 한 재미있는 드라마를 종영한 후 6회분을 몰아서방영해주어, 시청자에겐 퍽 좋은 기회를 얻었다.
정조시대 성균관 박사 김병헌이 당쟁에 몰려 죽자, 가산이 기울고 어린동생은 중병을 얻어 김병헌의 여식이 사내동생의 이름으로12살부터 남장 꽃도령선비로 행세 책방에서 책을 베껴주고 동생의 약값을 버는 시쳇말로 조선시대 소녀가장이었다. 책방주인은 어린선비의 학문이 깊음을 깨닫고 巨擘(거벽은 조선시대 과거시험의 답안지를 대신 지어 주던 사람)을 시켜서 꼼짝없이 빚에 몰려 병조판서의 소실(妾)로 팔려가는 신세를 면케 해 주었다. 책방에서 앞날이 촉망되는 좌의정의 아들인 훌륭한 선비를 만나서 과거에 급제까지 하게 되었다. ‘계집은 벼슬에 나가지 못하는 국법을 어기고’성균관 유생이 되었다. 재주를 한 것 펼칠 수 있는 성균관 사인방에게 정조임금은 천도의 구실을 붙일 수 있는 金騰之事(금등지사)‘오해가 없도록 고이 보관된 문서’를 찾는 밀명을 내리게 되는 코믹한 스토리였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오직하나 女性部가 있는 나라다. 그러나 이들은 ‘세계사에서 전대미문의 가장 잘된 씨족사의 뿌리인 ‘족보’마저 그 根幹(근간, 뿌리와 줄기)을 흔들어 놓았으니’ 비분강개할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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