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함바집 소고

작성일: 2011-01-28

함바(飯場)는 일본어로 공사현장식당을 뜻하는 말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필자는 H건설사 중견관리사원으로 약 20여 년간 근무한 연유로 현장식당 선정과정과는 불과분의 관계에 있었다. 공사현장 식당운영은 공사장 식수인의 大小에 성패가 달려 있다. 건축, ??? 토목, 기계설비, 전기 공사장으로 크게 대비할 수 가 있는데, 토목은 댐 공사가 크고, 기계는 제철관계 설비 플랜트건설공사, 전기는 원자력발전소건설공사, 종합건축은 공항건설공사 등으로 현장마다 관련협력업체가 100여개의 크고 작은 회사가 참여하게 되고 따라서 많은 단종회사들인 하청 회사가 딸려서 공사 진척과 계절에 따라 식수인원이 늘고도 줄고도 한다. 공사가 한창진행중일 때는 동일현장 이라도 현장에 업종별 여러 개의 식당이 운영되기도 한다. 필자가 종사한 회사에선 작업소규모의 크고 작음에 따라 小作業所현장에선 관리주임이, 中간정도는 관리과장이, 大형작업소현장에선 관리부장선에서 식당운영권이 주어진다.
하지만 사람 사는 데는 꼭 원칙만 고수가 아니기에 현장소장의 내연의 여라든가 관리책임자의 친인척 등 본사 임원의 혈연지연(血緣地緣) 정실(情實)로 사(私)가 끼이는 것은 昨今마찬가지인가 보다. 하지만 저의 경우 과천 정부청사 1차 공사 땐 과천면 별양리 한 동리전체를 평탄작업 하는 적자 토목공사로 타인이 하던 자리에 해결사 격으로 부임했었다. 현장요구조건은 3가지였다. 첫째, 적자공사라서 공사자금지불이 더디다는 것과, 둘째, 식당메뉴의 질을 개선해 줄 것과, 셋째, 출퇴근 문제의 애로사항을 들어줄 것을 요구했다. 고로 나는 회의석상에서 즉답으로 약속을 하고 소신대로 밀고 나갔다. 나의 답은 현금을 쌓아놓고 일하기에 지불조건은 다 들어주되 태업은 용납 못한다하곤 식당의 식단품질은 개선한다고 약속을 했다. 출퇴근문제는 소형버스를 렌터카회사와 임대계약을 맺어 즉시해결 하였고, 공사대금은 본사와 협의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때는 한여름이라 다한증인 나는 관악산 숲속 칡덤불 속 나만의 휴식공간을 찾아 땀을 식히곤 했었다. 하루는 식당 주를 무괴 Jeep차에 태워 컴컴한 덤불속으로 데리고 갔더니, 딱 무 릅을 꿇고는 하는 말이 한달 안에 식당을 비워주겠다는 것이었다. 아마 내가 폭력을 가할 줄 알았는지 지금도 그 점에 대해선 아리송하다. 그 다음 억울한 점이 있으면 실토하라고 했더니 전임 책임자에게 오백만이란 웃돈을 주고 식당을 경영하게 되었는데 식수 인원은 적고 본전을 뽑으려니까 어쩔 수 없이 질이 낮을 수밖에 없었다는 무도리를 실토하였다.
나는 전임자를 만나서 현장이 어려우니 그런 뇌물을 본사에 보고하지 않는 조건으로 토해내게 했다. “여보오 당신 육교위서 팔 다리 없는 불구자가 접시 놓고 구걸하는 것 봤지요, 하고 물으니 봤다고 답했다. 예끼, 몹쓸 사람, 식구대로 육교위서 동냥을 했으면 했지, 그런 추잡한 짓을 해서야 쓰겠냐고” 하면서 호되게 질책을 쏘아 붙였다. 그 사람은 그 후 돈으로 뇌물로 매관매직을 하여 나를 앞질러 승진을 했고 조삼모사하게 요령을 피워 회사생활도 더 오래했다. 고려 때 최영장군은 見金如石이라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 했다” 작금 보도에 의하면 “함바 로비” 사건이 청와대비서관부터 경찰청장, 대형건설사 사장 등 고위직간부까지 추잡하게 연루되어 연일 곤욕을 치루고 있다고 신문, TV, 매스컴은 전한다. 청백리소리는 못들을 망정 건설회사 하위직도 마다하곤 낙향하여 청아(淸雅)하게 사는 내가 함바 식당 비리비리한 사건을 듣고 보니 옛날 건설회사 시절이 회억(回憶)되어 사나니 가슴이 요동치고 탄식이 절로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