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태고사의 중요성

작성일: 2011-04-11

太古史는 단군이전부터 정의하고, 上古史는三國時代이전역사를 학계에선 통용해 왔음으로, 반만년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우리역사는 환웅(桓雄)의 신시(神市) 배달(倍達: 갑절로 넓혀나간)桓字 를 ‘한’으로 읽어 하늘님에 제사지내는 종교적역사의 뿌리이기도 하다.
주어진 짧은 지면을 통해 반복 역사를 언급하고 있지만, 우리민족이 개천(開天)으로 향한 고유종교는 제일대 환웅이 세운 거발한神檀樹에서 800년 후엔 제10대 환웅 갈고천황이 중국 산동반도로 배달을 했고, 다시 청구(靑丘)신시로 제14대환웅 치우천황이 2차로 배달을 했으며, 765년 만에 또다시 고조선 제1대단군이 송화강 유역으로 아사달(阿斯達: 언덕에 이르기를 다했다)하여 신단수를 세운 종교적 유구한 역사를 갖고 있다.
일제에 의한 식민사관植民史觀)도 미결인 史學 앞에,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까지 설상가상 차제에 지금부터라도 태고사를 숙지하고, 배달민족의 역사를 정립시킨 태고사학을 선양해야 한다.
태고사를 전해온 사서들은, 신라충신박재상의 <부도지>, 안함로 원동중 스님의 <삼성기>, 고려국사 일연스님의 < 삼국유사), 조선학자 이맥선생의 <태백일사>, 신라 해동선인 최치원의 <천부경과 난랑비서>, 단재 신채호 선생의 <조선상고사>, 운초 계연수 열사의 <환단고기>, 정인보 선생의 <조선사연구 1946년>등이 있고, 단군관련서적으로는 <고조선제국사: 김종서, <백두산민족문화와 천부경:권태훈>, <천부경의 수수께끼: 윤해석>, <한글단군이 만들었다.: 정연종>, <실증한단고기: 이일봉>, <민족문화연구원 학술총서: 심백강>등 이 있다.
만약시(萬若時) 남북한 7천만 인구를 중국대륙 한 귀퉁이로 이주시켜놓았다면 민족동화정책 소용돌이에 말려13억 인구 속에 흡수되어 韓民族은멸절(滅絶)될 수도 있어 가위 염려스럽다. 과거 소련이 연해주 조선인을 불모지 동토로 이주시킨 사례며, 일본이 과거 우리의 말과 글 을 빼앗고 혼을 뽑아 우리민족 문화를 말살하려 했고, 아직도 독도를 일본 땅 이라고 우겨 호시탐탐 뭍으로 기어오를 기회만 노리고 있지 않은가? 중국은 중국대로 동북공정으로 반도침략의 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니 한국은 지정학 적으로 샌드위치가 되었다.
왜놈들은 억지로 역사를 날조 남의 땅을 차지하려는 판에 우리나라 얼빠진 친일 어용학자들은 거기에 동조 ‘상고사 태고사’를 부정하는가하면 입시를 핑계로 한국사 가르치기를 도량방해공작을 하고 있다. 게다가 영향력 있는 얼빠진 자들은 ‘國語를 英語로하자 했고’, ‘대학입시 歷史시험을 영어로 치르자’고 하는 등 중고등학교 교육과정에 역사과목을 필수로 하자는 데에 묘하게 물 타기를 하고 있다.
일제하 -간도특설대의 만행을 민족문제 연구소 자료 「연변작가 유연산 씨가 쓴 ‘일송정에 푸른 솔은 없다’」 에 언급된 간도특설부대의 만행을 본보기로 한다.
-1939년 5월, 야간 토벌작전 중 산나물 뜯는 사람들을 잡아다가 불태워 죽였다.
-1939년 7월, 자신들의 충혼비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전사한 항일대원의 배를 갈라 내장을 꺼내 빈 통조림통에 넣었다.
-1941년 겨울, 포로로 잡힌 항일부대원의 머리를 군도로 자르고 잘린 머리채를 들고 기념촬영을 했다.
-1944년 4월, 팔로군을 숨겨준 마을 원로를 죽인 후 그의 머리를 솥에 삶은 후 두개골로 장식품을 만들었다. 고 증언했다. 이래도 인도적견지로 이러한 현대사위에서 일본에 미친 듯이 구호금품을 퍼 주어야 할까 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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