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나의 조국 금강산

작성일: 2004-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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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지 기자 북한 현지 취재 -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 금강산 자락 온정리마을 어귀에 붙어있는 구호다.
금강산 육로관광의 출발은 생각만큼 편하지 않았다.
함양에서 오전5시가 안돼 출발했지만 금강산에 도착한 것은 오후4시를 훌쩍 넘어서였다.
하루를 길에서 다 보내야만 했다. 집결지인 고성 금강산콘도에서 관광증을 교부받고
1시간 반을 마냥 차속에서 대기해야 했고, 통일전망대의 출입국관리소(CIQ)와
금강산의 북측 CIQ에서 두번의 수속을 거쳐야 했다.
긴 버스길, 지루한 기다림, 엄격한 통제는 들떴던 여행 기분을 상하게 했다.


● 군사도로를타고 DMZ을 지나
남측 CIQ에서 2박3일의 안내를 맡은 관광조장(가이드ㆍ북에서는 조장이라고 함)을 만나 일행을 태운 35인승 버스가 출발고 함께 금강 답사가 시작됐다.
커튼 없는 버스는 울퉁불퉁 군사도로를 타고 탱크 저지선을 지나 3개의 철조망으로 된 남방한계선을 넘었다. 유난히 도토리나무가 많은 DMZ구간, 남측 최전방 금강통문을 지나자 휴전선 표시인 노란쇠말뚝이 무정하게 옆을 스친다. 드디어 북녘땅이다.
검문을 위해 버스에 올라탄 북측 군인은 작은 덩치에 날카롭고 살기가득한 눈빛과 차창 낯선 긴장감으로 가득한 차안을 말 한마디 없이 한번 훑고는 내겨갔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북한들녁에는 나무 한그루 보이지 않고 잔풀만 엉성 엉성보이고 옆 철로에는 앙상한 갈비뼈가 보이는 젊은 군인들만 철도공사에 땀을 흘리고 있었다.
통일전망대의 남측 CIQ에서 금강산의 북측 CIQ까지의 1시간 버스길은 그 자체로 하나의 관광상품이다. 잠시 머물거나 사진을 찍지는 못하지만 분단의 현실을 몸으로 체험할 수 있다.
낙타봉과 가마봉, 김삿갓의 일화가 얽힌 남강을 건너자 북한의 마을 몇군데가 나타난다. 소가 밭을 갈고, 냇가에서 물을 긷는 아이의 모습은 초라했고, 큰 짐을 머리에 이고 먼 길 가는 아낙은 고단해 보였다.

● 아름다운 나의조국 금강산이여
다음날 구룡연 코스에서 금강산 관광이 본격 시작됐다.
버스를 타고 구룡연 입구의 신계동으로 가는 길 양편은 소나무 중 최고로 치는 금강송이 군락을 이뤘다.
예쁘게 뻗었다고 해서 미인송, 껍질이 붉어 홍송 혹은 적송, 임금의 관으로 쓰인다고 해 황장송 등으로 불리는 소나무다.
신계동에서 시작된 산행, 나무터널을 한참 지나니 비구름과 안개 속에 금강산이 고운 자태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계곡의 물살은 며칠째 내린 비로 풍성했고 집채만한 바위를 휘감는 물결 소리는 크고 깊었다.
여독의 찌뿌둥함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안개처럼 사라지고 물소리에 맞춰 몸은 절로 덩실댄다. “아! 역시 금강산이구나.”
옥류동과 연주담을 지나자 발에서 묵직한 진동이 느껴졌다. 봉황이 꼬리를 휘저으며 날아 오른다는 비봉폭포였다.
상팔담을 거쳐 구룡연의 마지막 코스는 한국의 3대 폭포중 하나인 구룡폭포.
금강을 지키는 9마리의 용이 산다는 곳으로 70여m에서 떨어지는 물살이 장쾌하다. 바닥을 친 하얀 포말은 비구름, 안개와 합쳐져 아득한 풍경을 연출 하는데, 여름의 금강을 신선이 노니는 봉래산이라 했다는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 표현 할 수없는 아름다운 절경의
만물상
구룡연코스가 여성적이고 부드럽다면 만물상은 기암도 뾰족하고 길도 험해 남성적이다. 마지막 날 수십 구비를 돌아 버스에서 내린 만물상 입구에는 일본 투구를 쓴 장수바위가 마중 나왔다.
계곡을 따라 난 산행길은 험상궂은 귀신 모습의 귀면암, 3명의 신선이 바주보는 삼신암, 큰 도끼로 찍어놓은 듯한 절부암 등 기기묘묘한 바위가 눈길을 잡아챈다.
깎아지른 벼랑의 쇠사다리에 몸을 의지한 채 천선대에 오르니 만물상 전경이 눈 앞에 펼쳐진다. 천선대 하산 길에는 하늘로 통하는 현관인 하늘문과 망장천을 지난다. 지팡이를 짚고 온 노인이 이 물을 마신 뒤 힘이 솟아 지팡이를 잊고 내려갔다는 약수터다.
금강산 유람을 아쉽게 마감하고 남쪽나라 나의고향 함양으로 돌아오는 길. 차창 밖 북녁 주민의 삶의 모습은 정말 무엇라고 비교할 수 없는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우리가 살아온 60년대의 옛모습을 보고 돌아오는 느낌이었으며 여기에도 언젠간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변화하여 나날이 발전하기를 기원해 본다.

한태수 기자
taesu878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