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소대장 나도 고엽제를 뿌렸도다

작성일: 2011-07-07

3대에 걸쳐 죽음과 고통을 안겨주는 만행
미국군부가 개발한 고엽제는 청산가리보다 10,000배나 독성이 강한 독극물인데, 미군부의 주문에 따라 고엽제를 생산한 미국회사 다우케미컬(Dow chemical)은 제초제보다 독성이 50배나 더 강한 독극물 고엽제를 대량생산하여 미군부에 납품하였다.
1969년 말 미국의 바이오 테넥스 연구실에서 동물실험을 실시하였더니, 고엽제에 들어있는 독극물 다이옥신(dioxin)이 2ppt(part per trillion)만 동물 몸속에 들어가도 죽거나 기형아를 출산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이옥신 2ppt의 맹독성을 알기 쉽게 설명하면, 올림픽 경기를 진행하는 대형 수영장 (50,000㎥)10개에 채워 넣은 물에 다이옥신 두 방울을 떨어뜨린 다음, 그 수영장 물을 실험동물 몸속에 주입하면 죽거나 기형출산을 하는 것이다.
필자역시 67년 ROTC 소위로 임관하여 서부전선 00사단 포병사령부 000포병대대 Bravo포대 전방 관측장교로 68년 재직 시에 휴전선 남방 한계선에 대간첩용 가시철조망을 치는 공사소대장으로 차출되어 힘든 작업을 완수했다.
그 당시 사계청소를 위한 고엽제를 치기 위해 빈 드럼통을 반으로 쪼개어 따라 원액에 경유를 희석하여 구리스오일 통으로 퍼서 철모 내피 파이버로 산야에다 맨손으로 뿌리고선 풀이 말라 죽은 그 자리에 본 공사작업을 했었다.
청년 병사들은 제초제가 몸에 이로운 약이라 모기가 얼씬도 안한다고 좋아하며 노출부위에 바르고 등말을 치기도 했는데, 작업소대장이었던 필자가 고엽제에 관한 사전지식이 전무하였고, 풀을 없애는데 좋은 미국제약이라는 것만 알았을 뿐, 제초제가 고엽제와 같은 용도라는 것조차도 몰랐던 무식함을 고지 코져 한다.
제초제에 관해선 서울생활을 접고 귀향 후 알았으니까, 20년이 채 안되었고, 나의 교양부족 소치로 병들어 괴롭게 살아갈 부하병사들에게 죄스런 마음 금할 길 없다.
지난 현충일에 베트남 고엽제회원 전우들과 나와 같은 부대서 근무한 ‘한국전 고엽제 환자인 신모씨’를 식장에서 만나 본즉 더 더욱 죄스러운 마음이 앙금으로 남는다.
당시 일화로 주특기가 전방 관측장교인 필자가 부대에서 이른바 미운털 박힌 장교인지라 작업소대장으로 차출 보병부대에 파견근무하게 된 터였는데, 가뭄에 푸성귀 밭에 물 주듯이 바가지로 퍼서 뿌렸다.
6.25 전쟁당시 UN군이 뿌려 논 발목지뢰나 도시락지뢰를 어디서 밟을지도 모르는 위험한 지역이라“길이 아니면 다니지 말라”가 안전수칙이었다. 작업이 끝날 즈음 선임하사가 몇 드럼 남았는데 어떻게 처리할까를 물어왔다.
야, 이 X새기야 지금 와서 말하면 나보고 둘러 마시라는 것이냐며, 쪼인트를 냅다 까곤 지형을 살펴서 북쪽으로 경사진 지점에 적당히 쏟아버리고 빈 드럼을 반납토록 찝찝한 명령을 했었다. 그 때 처한 입장으로선 최선책이었으나, 뒤돌아보니 청정 휴전선에 파묻는 것이나 쏟은 것이나 간에 국토오염문제는 이판사판이 아닌가 싶다.
6월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호국보훈”이란 사전적 의미로 “나라를 보호하고 공훈에 대한 보답함이라”했다.
베트남고엽제전우회, 6.25참전 유공자회, 상이군경회, 재향군인회 등 보훈단체의 자축기념행사를 잇달아 지켜보는 감회는 착잡했다.
필자는 일제탄압과 6.25 전쟁 통에 전 가족 남자라고는 씨를 말린 참상(慘狀)을 입은 당자로서 빛바랜 군복을 차려입고 나온 허리 굽은 노병들 가슴의 훈장과 기장을 보면, 義에서 울어나는 측은지심이라 할까, 상무정신을 짓밟고 출세가도를 치달린 병력미필 위정자들의 횡포와 고루한 행위에 대한반감을 억누를 수 없어 실성한 것처럼 독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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