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居昌충혼탑

작성일: 2011-07-15

지난주 7월 6일 晋州보훈청은 거창읍 상림리 소재 충혼탑을 경남최고의 현충시설물로서 지정하여 필자는 금일 이곳을 탐방 해보니 과연 경탄을 금치못했다.
124계단 층층대로 올라서보니 잡귀신을 쫓는다고 왕릉뒤엔 꼭 심는다는 혜자림 소나무가 울울창창하고 비록 풍마우세에 글자가 마모되었지만 옛 충혼비가 더더욱 고풍스러웠다. 남녘을 바라다보니 소백산 끝자락 우람한 감악산 봉우리가 龍飛鳳舞하고 東으로는 금귀봉이, 西로는 망실봉이 좌청룡 우백호하며 北으로는 아홉산이 병풍처럼 감싸돌았고 그아랜 2500여평 非山非野 동산엔 ‘호국무공수훈자비’와 ‘월남참전기념비’가 우뚝솟아 역전의용사들 기상을 상기케하였다. 과연 이곳이 경남최고의 명당 호국영령들의 보금자리요 혼승백강(魂昇魄降)의 吉地라싶어 오늘 내가 이렇게 好衣好食하며 잘살고 있는 모습이 1087位 전몰 장병들앞에 숙연해짐은 딸기만한 심장에 양심이 살아있다는 증거다.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모든 지휘관들 장교들이 휴가차 나간틈을 타곤 20만 괴뢰군들이 242대의 소제 전차와 211기의 전투기를 띄워선 질풍노도같이 삽시에 서울을 수라장으로 만들었으니 시민들은 포성소리를 듣고는 국군이 어디서 사격연습을 하는가 싶었다니 북괴의 음흉한 야욕이 증명된것! 개전 한달만에 포성이 지축을 흔들고 총알이 빗발치는 화력앞에 괴뢰군들이 낙동강까지 밀고 내려왔으니 남한山河는 尸山血海가 되었고 국운이 풍전등화 아니었던가.
필자가 오늘 충혼탑앞 전적비를 읽어보니 국군이 30만, UN군이 6만명 전사하였고 100만 아군이 부상을 당했으며 1천만 이산가족이 지금도 고통에 살고 있다니 전사상 유래없는 동족상잔의 비극아닌가. 어제 뉴스엔 中.北우호조약중 북한에 전쟁이 발발하면 중국은 자동개입 우방을 돕는다하니 한반도는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 휴전중 항상 전운이 감도는 딜레마에 빠져 한이많은 민족이다.
昨今 우리 민족사를 회고컨대 수많은 외침과 항쟁, 내란으로 점철된 나라라 그만 동족 南北이 손잡고 앞으로 나가면 아시아서도 중국다음 제2의경제대국으로 부상할텐데 남한내에서도 정치인들중 친북세력들이 호형호제하면서 북한을 옹호하며 싸우니 남북통일은 요원하다. 사람이 好生惡死라고 일신의 부귀영화를 버리고 위민위국정신에 자기 한몸 초게시하여 죽어간 호국영령들에 모독이다.
필자도 몸서리치는 6.25사변을 겪었고 仲씨께서는 참전 상이용사라 금일 충혼탑묘역을 주유하면서 그날의 감회에 젖었는데 묘역 뒷편 ‘비목’을 읽어보고는 서운함을 필하노니 “초연히 쓸고간 깊은계곡”은 반드시 ‘초연이’로 고쳐써야함은 ‘초연히’란 “관계가없다”는 뜻이고 ‘초연이’는 “화약냄새, 연기”란 뜻이라서다. 2절 가사에서도 ‘공노루’가 아니라 ‘궁노루’로 고쳐써야함도 지적한다. 이곳은 아직도 순국선열들의 넋이 살아숨쉬는 곳이요 전후세대들엔 국란극복의 산 교육장인데 노랫말이 틀려서야 되겠는가. 비목가사엔 애절한 사연이 깊다.
1963년 화천 백암산 비무장지대 철책선을 순찰하던 한명희 소위가 발끝에 채인 나무조각을 주워보니 무명용사의 위패(位牌)비목이요 흙더미속엔 앙상한 백골과 녹슨 철모가 있어 그날의 쓰린 비감(悲感)을 노트에 적어와 훗날 작곡가 장일남씨께 주었더니 그노래가 유명한 비목으로 탄생, 우리들 흉금을 울려주고 있는데 MBC애창곡 설문조사서도 1위가 되었단다. 포성이 지축을 흔들고 초연이 자욱한 전장터에서 초동친구, 부모형제 다 두곤 이곳 險山에서 산화한 무명용사들의 넋을 달랠 진혼곡이요 충혼의백(忠魂義魄)의 뜻이깊어 꼭 고쳤으면하고 124개 계단도 Standing을 두곳만 더 설치하면 16개가 줄어 108개 계단으로서 인간세간 108번뇌 벗고 극락천당에서 편히 영면할수 있다는 뜻에서다.
P.S 동림석재에 문의하니 誤字는 무임으로 떼우고 파서 줄수있다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