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성묘(벌초)斷想

작성일: 2011-09-08

필자가 사는 동네이름이 개봉(開封)이라 묘(뫼)를 쓴다는 뜻인바 지금은 뫼실, 묵실로불리고 있다. 고로 居昌서는 제일큰 공동묘지가있어 70년도 초 필자가 집을지어 왔을땐 공동묘지선 상여꾼들의 ‘너와능차’앞소리에 뒤따르는 상주들의 哭소리가 구슬프고 下棺시엔 망자의 딸들이 피발도선(被髮徒跣)하여 머리풀고 버선벗곤 슬피우는 모습이 처량도했었다. 어떤때는 화장장에서 고리타분한 냄새와 연기가 날려와 밥도 못먹을 지경이었으며 추석절기땐 성묘객들이 벌초하느라 기계음소리, 사람들소리로 왁자지껄 했었는데 한세대가 지나면서 벌초꾼도 줄고 무연분묘가 늘면서 공동묘지가 아카시아 설대숲이 되고말았다. 나는 심심하면 애들데리곤 공동묘지로 산책을 간다하니 친구들이 맹모삼천지교論을 펴며 무섭지 않느냐고들 하지만 문명국 런던이나 파리, 로마市內를 걷다보면 묘지가 시내 한복판에있어 묘비銘이 구구절절 애달파 비석문을 100여편을 써왔도다. 로마市內 거대한 피라미드 앞 공동묘지를 가보면 英國낭만파 詩人 존keats의 비석엔 글한자 없고 뒤편에 ‘물로쓴者 (writ in water, 허무라는 뜻)여기 누워있노라’고 쓰여있어 공수來공수去라는 중국인의 사상 즉, 인생은 空이요 無라는 뜻에서 無字碑를 세웠다하니 그가 26살때 죽었는데 어떻게 人生을 다안다고 “밤꾀꼬리에 부치는 詩”를 읽어보면 인간苦樂을 잘 표현했는가싶어 필자도 그의 묘앞에서선 묵념을 올렸다. 인생이 살고 죽음에있어 숨한번 더쉬고 덜쉬는 차이뿐 저승이 門밖이라 진흙의 명령(clay given mandate)에 권력도 금력도 無用하고 호연지기 마음비워 참되게살다 미련없이 간다면 인생의 참모습아닌가. 영국속담에 생명이길다고 하나(Life is long but death is always present)죽음은 언제나 곁에있다하니 草露같은 인생 去者日疎라 죽은사람 정도없어 사후 “그놈”소리 듣지말지어다. 악행과 악습을하며 악착같이 산다고 발버둥 쳐봐야 숨쉬기만 번거롭고 끝내 다다른곳이 공히 10자안팍 흙구덩이속, 이곳은 하나님의 영역이라 도둑도 세금도 없고 나이도 더먹지않는 無何有지향이라 시왕사(十王使)가 부르면 왕이든 총리든 요즘 돈놓고 돈따먹는 교육감이든 지위高下간 세상과 斷하고 따라나서야 한다. 불경에도 生者必滅이요 혼승백강(魂昇魄降)한다 했고 성경에도 ‘흙은 흙으로’ 歸土한다 했으며 하늘아랜 새것도 영원한것도 없다했으니 그것이 우주질서요 규칙아닌가. “낙양성 십리밖에 울퉁불퉁 저 무덤아, 만고 영웅이 그누구뇨 우리들 인생은 저와같이...” 필자가 오늘(9.4)선대묘엘 벌초갔다가 陽平里 정수장 뒷산이 90도각도라 넘어져 다쳐선 누워있는데 벌초꾼들이 내게와선 어떤 반풍수가 이따위 비탈진곳이 명당이라 묘를 썼는고 하면서 梁혜민이란 용역꾼은 풀을 끌어내다 땡삐한테 쏘였다고 성을 내면서 치료비를 더달란다. 필자 생각에도 좋은묘지란 배산임수(背山臨水)하고 들도 산도 아닌 非山非野가 안택이지 이런 가파른 산소엔 자손도 잘찾아오질 않는다고요. 묘도 부부합장을해서 묘지를 줄이면 벌초하기도 쉽고 국토잠식이란 대재앙이 없질않겠는가. 얄구지 반풍수가 따라와선 큰산 주령을 보곤 좌청룡 우백호라 靑山綠水가 메마르지 않는다며 이삼백평 大地에다 여기저기 묘를 잡아주니 죽은 조상 때문에 산사람도 못살게 되었으니 반풍수 집구석 망친다는 속담이 생긴게야. 필자는 집뒤 조부모님 묘를 한봉으로 하곤 아버님 형제 伯仲叔季4구묘도 부부합장을 했으며 내4형제도 다 합분을 하니 총 18구 3代묘가 20평안에 있어 邑內를 나올땐 出必告(곡)하고 反必面하며 설,추석땐 간단한 차례로 無祝單獻하니 조상의 蔭德받아 내마음 편한데 왜 당신들이 날 무례한 常놈이라고 하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