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더럽고 느리게 친환경 육아
작성일: 2004-08-09
자연으로 돌아가자. 어느 철학자의 외침만이 아니다. 요즘 부모들 사이에서 자연주의 육아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자연주의 육아’의 핵심은 먹거리·교육·놀이 등은 최대한 있는 그대로, 아이들의 성장발달에 맞춰 자연스럽게 키우자는 것.
육아사이트마다 ‘남보다 일찍’이라는 조기교육의 열풍만큼 놀이, 품앗이, 자연, 나들이를 주제로 하는 모임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같은 움직임에 대해 정부과천청사 어린이집 송경섭 원장(중앙대 유아교육과 강사)은 “학교에서의 일등이 사회에서의 일등은 아니라는 부모들의 자각이 커지고 있다.
또한 학습 테크닉은 나중에라도 배울 수 있지만 사회성이나 인성은 어렸을 때 갖춰야 한다는 인식이 커지면서, 자연육아가 힘을 얻고 있는 것 같다. 2~3년전부터 유치원과 어린이집들에서도 부쩍 자연 체험학습이나 현장 체험학습을 강조하는 곳이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장난감 대신 자연을
지난해와 올 상반기 어린이관객 최다동원 기록을 세웠던(어린이 포함 5만명) ‘흙놀이 바투’는 다음달 6일부터 또다시 앙코르공연을 준비중이다. 흙을 만지며 놀 수 있다는 것에 어린이만큼이나 부모들이 환영하고 있다.
옷을 더럽혀 엄마한테 혼날까봐 제대로 놀지 못하던 아이들도 많았지만 이처럼 요즘의 부모들은 아이가 즐겁게 놀 수 있다면 흙이나 모래, 물놀이에 대해서도 관대한 편이다.
의사들도 너무 깔끔 떨기보다는 아기를 ‘적당히 더럽게’ 키워야 정서적으로 좋고 세균과 바이러스 등에도 잘 싸울 수 있어 알레르기 예방에도 좋다고 권한다.
#모유 먹이기, 천기저귀 쓰기
먹거리의 자연주의는 모유 먹이기부터 시작된다. 분유광고엔 세련된 엄마들이 모델로 등장, “아기를 위해서”라고 강력하게 호소하고 있지만 요즘은 직장여성들도 모유를 먹일 수 있는 환경을 부러워한다.
젖먹이 아이를 둔 엄마들이 전철에서 모유먹이기 퍼포먼스를 하고 아빠들도 모유수유 캠페인에 동참할 정도로 모유 선호가 자연스럽다. 아이의 건강을 생각해 천기저귀를 쓰는 부모들도 많이 늘었다. 특히 기저귀를 세탁·소독해 배달해주는 대여업체들을 통해 한결 편리하게 이용하고 있다. 두 아이에게 모두 모유를 먹이고 천기저귀를 사용하고 있는 이성희씨(33·경기 광명)는 “조금 귀찮기는 해도 모유가 좋다니 계속 먹일 생각”이라며 “주변에서도 모유와 천기저귀로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약 안먹이기
‘약 안쓰는 병원’으로 유명한 서울 압구정동 홍은소아과 고시환 원장은 “아이들 질환의 90%이상이 바이러스성 질환인데, 약을 먹지 않아도 일정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낫는다”고 강조한다.
처음엔 빨리 낫게 해달라던 부모들도 “아플 때 아파봐야 아픔을 이길 힘을 얻을 수 있다. 몸속으로 들어온 약은 없앨 수 없지만 의학이 발달한 요즘은 늦었다고 생각할 때 약을 먹여도 아이가 잘못되는 경우는 없다”며 약 의존성을 줄이라는 고원장의 말을 수긍한다.
고원장이 약 대신 강조하는 것은 아이의 건강에 대한 기록과 영양이다. 평소와 아플 때의 증상, 먹는 것, 약에 대한 반응 등을 꼼꼼히 비교해 보면 약을 적게 사용하고도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는 것. 별다른 기록이 없으면 가장 강한 처방을 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또한 아이가 안 먹는다고 고민하는 부모들이 많은데 아이가 먹는 양은 어차피 정해져 있으므로 양보다는 영양에 특히 신경을 써야 한다고 조언한다. 조금을 먹더라도 제철재료의 영양가 높은 음식물을 섭취하도록 해야 아플 때 싸울 힘을 축적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느리게 키우기
연대 소아정신과 신의진 교수는 2000년 ‘현명한 부모는 아이를 느리게 키운다’라는 책을 펴내며 조기교육에 반기를 들었다. 조기교육으로 병든 어린이를 하루에 수십명씩 만나며 그 폐해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신교수의 학습법의 핵심은 아이가 하고 싶어할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 아이가 하는 대로 지켜보다가 무언가 호기심을 보일 때 살짝 밀어주면 아이가 보다 빨리 독립적으로 성장한다고 강조한다.
신교수는 “느리게 키우기야말로 아이를 잘 이해하고 있는 부모만이 할 수 있는 아주 어려운 육아법”이라고 말한다.
#자연속 놀이 무엇이 있나
◇풀놀이=강아지풀을 뜯어서 움직여 보게 하고 손등을 간지럽혀 보기도 한다. 이파리를 반으로 접어 부는 풀피리 놀이도 재미있다. 토끼풀이나 각종 들꽃으로는 팔찌와 반지를 만든다.
◇산가지 놀이=산이나 공원에 가면 떨어진 나뭇가지들이 많다. 나뭇가지 하나를 들고 땅에 있는 나뭇가지를 툭 쳐서 누가 더 멀리 나가게 하나 시합한다.
◇성 쌓기=돌멩이를 주워 개천에서 성을 쌓거나 돌을 쌓고 물을 막아 연못을 만들어 논다. 산에서는 솔방울로 탑을 쌓는다.
◇봉숭아꽃 물들이기=봉숭아 꽃잎과 이파리로 서로 물을 들여주면 부모는 어렸을 때의 향수를, 아이는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지렁이찾기=비가 오면 화단에서 나뭇가지로 지렁이나 달팽이를 찾아 관찰한다.
◇조개껍질 무늬만들기=갯벌이나 모래사장에서 조개껍질을 찍어 무늬도 만들어 보고 조약돌을 많이 모아 모자이크 얼굴을 만들어도 재미있다.
◇조개, 돌멩이 그림=바닷가에서 주워온 조개껍질이나 돌멩이들에 아크릴물감으로 그림을 그려 장식한다.
◇옥수수 껍질=1회용 접시에 얼굴을 그리고 옥수수 수염과 껍질로 머리카락을 만들면 멋진 ‘사람’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