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고전으로 본 정치 사명감

작성일: 2011-12-01

요즈음 정치판 돌아가는 꼬락서니가 쓰레기통같이 쑥쑥 하고 거북함을 비유하자면, 본래 政治는 政자파자인正은 ‘광정(匡正바로잡음), 규정(規程바른법규)’등을 뜻하고, 백성을 다스리는 도리는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은 반드시 刑·政·法·德·道의 다섯 방면에서 백성을 섬겨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반드시 자신의 몸을 바르게 하여야 한다고 했다.
곧, 위정자는 솔선수범하여 정사를 바르게 복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論語논어』의 “먼저 몸을 바르게 하면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행해지고, 그 몸을 바르게 하지 않으면 명령을 내려도 따르지 않는다”는 말과 상통한다. 즉 형단영직(形端影直)이라, 내 몸이 바르면 그 그림자도 바르다는 뜻이다.
산이 높고 무너지지 않으면 복을 구하기위해서 양을 바치는 제사를 드린다. 연못이 깊고 물이마르지 않으면 그곳에 산이 있다고 여겨서 옥을 빠트리는 제사를 올린다. 하늘은 그 법칙이 변하지 않고, 땅은 그 법칙을 바꾸지 않으며, 봄·여름·가을·겨울 사시사철 그 순서를 바꾸지 않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용틀임은 물을 얻어야 신령함을 세울 수 있고, 범과 표범도 심산유곡에 있어야 비로소 위엄을 떨칠 수 있다. 비바람은 일정한 방향이 없어 무심한 까닭에 그것을 맞는 사람이 원망과 노여움을 갖지 않는다. 장수하거나 단명하거나 가난하거나 부유한 것은 아무런 이유 없이 그렇게 되지 않는다.
군주가 덕이 있어 존경할만할 때 백성이 그 명을 받드는 것이, 군주의 말을 듣고 따르는 것도 그 덕망이나 명성이 높기 때문이다. 군주가 백성을 강압적으로 부리거나 수탈하지 않으면, 백성은 스스로 나서서 봉사하고 헌신하는 것이다.
바람에 우는 다북쑥 소리같이 뿌리 없이 떠도는 뜬소문은 상관할 바 못되며, 제비와 참새같이 떼 지어 모여 있는 잡스런 소인배들은 큰 道를 행하는 사람은 뒤돌아보지 않는다.
들판의 나지막한 언덕을 높다고 할 수 있는가? 헐뜯고 허튼소리 잘하는 사람에게 대임을 맡기지 말라. 크게 꾀하는 사람이라야 위대한 일을 수행 할 수 있다.
군주가 은덕을 베풀어 백성이 마음으로 따르도록 하는 한편, 위엄 있는 태도로 임하면 군주의 도가 모든 면에서 갖추어질 것이다. 백성을 안락하게 하지 않으면, 백성도 군주를 걱정하지 않는다. 군주가 백성을 잘살게 하지 않으면, 백성도 군주와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걸고 희생하지 않는다. 군주가 백성에게 은덕을 베풀지 않으면 백성도 희생하며 봉사하지 않는다.
관자의 최고이념은 ‘질서(治)’와 ‘부강(富强)이다. 군주가 어떻게 국가를 잘 유지 발전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이것은 비단 정치학만의 문제는 아니다. 오늘날 다양한 종류의 조직을 경영하는 CEO들이 어떻게 조직과 시스템을 유지관리하고 발전시켜 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춘추전국의 오랜 전쟁과 혼란 속에서 터득한 정치나 행정시스템경영의 고객감동 최고의 노하우를 『관자』가 오늘날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 아이러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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