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가는대로> 활로 제패하다
작성일: 2012-01-13
재작년 2010년 중국광저우에서 열린 아시안게임에서 우리나라가 양궁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싹 쓸어오는 신화를 달성했다. 세계 양궁 사에 이름을 떨칠 신예선사(善射)들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선사란 활을 잘 쏘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고구려시조 동명성왕의 이름은 주몽(朱蒙)으로, 이는 ‘활을 잘 쏘는 사람’을 지칭하는 夫餘語 란 다. 그는 어릴 때부터 스스로 활을 만들어 쏘면 백발백중이었다고 한다. 백제의 다루왕 고려의종과 동시대의 서공(徐恭)과 조선의 이지란·최윤덕·유응부·이징옥·어유소·이순신은 후세에 이름을 남긴 훌륭한 선사로 전해진다.
東夷族의 활 실력은 중국의 제갈공명도 두려워할 정도였다고 한다. 오죽하면 제갈공명이 <동이전>에서 “동이족이 강한 이유는 활이라는 날아가는 창이 있는데 우리는 그 무기를 이길 수 없다”며 “전쟁을 해서는 안 되고 가급적 외교적으로 마무리해야 한다.”고 당부했을까?
주몽이 세운 고구려와 뒤를 이은 발해, 고려 역시 활쏘기로 유명했고, 조선의 태조 이성계, 임진왜란에서 공을 세운 이순신장군도 활을 쏘는 무술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현대과학의 발전으로 활을 만드는 첨단소재가 많지만, 우리고유의 조선의 활, 각궁(角弓)만큼 화살을 멀리 보내는 활은 없다. 지금각종양궁대회 최대거리는 70m에 불과하며, 역대중국에서 썼던 활도 100m밖에 나가지 않았다. 반면, 삼국시대 기록을 살피면 우리 국궁은 천보(500m)가량 날아갔다는 기록이 있다. 이순신이 연습 하던 과녁의 거리는 200m의 거리였다고 한다.
우리나라 활은 타국에 비해 크기가 작지만 화살이 잽싸고 멀리 날아간다. 각궁이라는 이름에서도 드러나듯 주재료는 물소 뿔이 쓰이지만, 그 외 쇠심줄, 민어부레, 자작나무껍질, 대나무, 뽕나무, 명주실 등이 각궁을 만드는 재료이다.
임진란 때 화살의 위력으로 적을 무찌른 예를 들어보자면, 역사교과서에는 권율장군이 행주산성에서 왜적을 무찌를 때 아녀자들이 행주치마에 돌을 싸서 날라 돌팔매로 왜적을 물리쳤다고 하나 새빨간 거짓이다.
행주산성(幸州山城)의 행주(行舟)란, 산성의 지세가 한강에 배가 떠가는 모습의 산성을 이르는 말로써 행주치마와는 무간한 것임에도 漢字를 모르는 신세대 어용역사학자가 왜곡했거나 아니면 친일 강단사학자들의 무지를 들어낸 역사왜곡이었음을 백일하에지적하고자 한다.
전라도 망암종가(望庵宗家) 의 유인물 “봉암서원과 화차전시관(鳳巖書院과 火車 展示?)”은 1989년에 완공된 이 전시관은 1986년 전라남도에서 명암문집을 참고하여 제작한 화차(火車), 총통(銃筒), 신기전(神機箭), 포통(砲筒) 등 임진왜란시 사용되었던 무기 모형 18종이 전시되어 있다.
임란전쟁 중 명암선생은 상소를 통하여 승전대책으로 대마도 공격과 강화도를 군사요충지화 하여 군량조달기지 전략수립을 제언한 전략가이다.
전라도 소모사 3번, 독운사 2번씩 맡아 군량30여만석 조달과 전쟁을 승리로 이끈 공으로 호성1등, 선무2등 공신이 되어 이조참판에 추증된 정란공신 이다.
왜적의 조총을 능가한 화차를 중재(윤증)의 도움으로 300대를 만들어 행주대첩에 결정적 기여를 한 국방과학자이다.
현대 화기로 치자면 발칸 포라고, 저공 비행기를 집중사격 하여 추락시킬 수 있는 화력과 비유되는 화차는 활로써 시위한번 당겨 화살 300여발동시다발집중사격 조총사거리를 능가한 화차가 행주대첩에서 권율 장군의 대승에 기여했음에도 어용 사학자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아녀자행주치마운운 뚱 단지 같은 역사왜곡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지를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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