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가는대로> 꽃 바위를 덮어라
작성일: 2012-02-09
열묘 각시봉은 경기도 연천군 장단면 고랑포리 와 백학면 백령리 두일리 에 있는 산 봉우리를 가리킨다. 여긴 북측 개성 땅과 지척인 군사분계선비무장지대 인데, 휴전선을 지키는 민정경찰대 G P장 겸 관측장교로 군복무를 한지역이라 그곳 지형을 좀 안다. 거기엔 북한군이 판 제2땅굴과 신라 경순왕의능이 있고, 옛날 고구려 땅인 고촌동은 원님이 고을을 다스렸던 시절 전설이 구전되고 있다. 각시봉엔 원님부인들의 분묘인 고총(古冢) 10기가 널려있어 후인들이 ‘열묘 각시봉’ 이라 부르는 산이다.
이야긴즉 원님이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아 부인이 꽃바람이 나서 외간남자와 통정을 하게 되니, 원님이 화가 나서 부인을 죽여 그 꽃봉산 높은 곳에 매장을 한 후 무당을 불러 굿을 하곤 서쪽 꽃봉오리 바위를 흙으로 덮어버렸다.
헌데 후일 서쪽마을 화산동 사람들이 질병에 계속 시달리는가 하면, 가축들도 폐사하는 등 병마가 끊이질 않아서 마을에선 용하다는 무당을 불러다가 굿을 하니까, 무당은 “이 마을 동편 산의 꽃바위를 누군가 흙으로 덮어서 산신령이 대노하여 우환이 끓이질 않는다.”고 “그 꽃 바위를 잘 보이게 흙을 파서 들어내 놓으라.” 고 비방 책을 일러 주었다. 무당의 말대로 화산동 사람들은 힘을 합해 꽃 바위를 원래대로 파서 들어나 보이게 해 놓은 후 화산동 사람들은 아무 탈 없이 화를 면해 잘 지낼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헌대 동쪽마을 원님 댁은 재혼한 둘째 부인도 바람이 나서 처형당해 꽃봉 능선에 매장하니 이렇게 매장을 반복 반복하여 열기의 분묘가 생겼다는 전설 아닌 전설의 각시 봉의 유래가 전해지고 있다.
제주도 산방산(山房山)앞에 자리한 山 하나가 있다. 제주군 안덕면 사계리와 대정읍 안성리의 경계에 있는 박쥐오름, 바금지오름 파군산 박쥐가 날개를 펴서 먹이를 덮치고 있는 형세로 마을을 바라보고 있기 에 그 기세에 눌려 마을에서 큰 인물이 날 수 없다고 믿었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김정희의 추사체와 이 박쥐산의 관련설이다. 김정희가 오래 동안 유배생활을 했던 대정읍 안성리 적거(謫居)지 마당에서는 박쥐오름이 빤히 바라다 보인다.
김정희의 글씨체는 단아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험악하고 괴이한 아름다움이 특징이다. 이곳 사람들은 추사의 기괴한 글씨체가 바로 이 박쥐오름의 모양새를 형상화 한 것이라고 말했다. 추사체의 글씨체와 이박쥐오름 (파군산)을 비교해보면 땅과 인간의 상관관계에 대해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사는 지역 어느 마을 산제당 터가 필자소유였는데, 산소자리로는 길지였지만, 묘를 쓰면 동티가 난다해 그림에 떡이었고, 또 현성산 가섭사지 위에 본인 소유 산이 있는데 명당 터라하여 도참(風水地理)설을 믿는 이들이 조상뼈다귀를 투장(偸葬)해 발복(發福) 을 바라는 허황된 짓을 한다는 소문이나 확인 한 바는 없다.
그런가하면 뒷동산에는 산소가 한기도 없다. 들은 말로 동리에 해가된다 하여 철저히 말린다하고, 호음산자락 진흙번디기에도 산소를 쓰지 못하게 하는데, 어느 해 몹시 가뭄이 들어 농작물이 다 타죽을 지경에 이르러서는 투장을 해서 그렇다고 하여 끝내 찾아내니 비가 왔다고 하는 이야긴데, 비야 天地造化로 올 때 되어서 온 것이지 산소 탓이 아닐 터인즉 비과학적 미신(迷信)은 타파해야 할 것이다.
중국 한나라 초기 사상을 집대성한 회남자(淮南子)도, 땅은 각각 그 땅에 유사한 것을 낳으며 사람이란 모두 그가 사는 곳의 정기(精氣)를 닮는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