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컴> 비수(匕首) 같은 성격

작성일: 2012-02-16

성격(性格)은 각인각색 자기가 지닌 특유한 성질, 품성, 격식을 말함이고, 성정(性情)은 사람의 성격과 마음씨를 가리키는 말로 통한다.
역사상 흔히들 위인을 가리켜 “대쪽 같은 절개(節介)니 우국충정” 이 비수 같으니 하는데, 환언하면 나랏일을 걱정하고 염려하는 올곧은 심정이 절개라면, 신념이나 이념 따위를 굽히거나 바꾸지 않은 강직한 태도가 아마 절개일 게다.
내 인생 고희에서 돌이키건대, 세상사 한 점 부끄럼 없이 “똑 바로 살아 왔는가를 한해가 저무는 세모(歲暮)에 닿아서 지난 삶을 살펴보건대, “난 진정 대쪽같이, 비수 같은 성정으로 살아왔는가, 아니면 천만부당 한가”를 곰곰이 되짚어 보았다.
본지 논어강좌 27의 해설 중 소욕불유구(所慾不踰矩)란 어구는 世上事 마음대로 해도 넘침이 없다는 공자님 말씀인데, 나이七十 이면 무슨 짓을 하든 法道에 어긋남이 없다는 어쩜 이런 삶이 ‘비수 같은 삶이거나 대쪽 같은 삶인가로 귀결’을 짓게 된다.
나는 군복무시나 직장생활에서 직무와 관련된 일이 좋던 궂든 정직성을 바탕으로 일관성 있게 실행하려고 노력했을 뿐 달리 자신을 위한 로비랄까 아첨 등 막후교섭을 해본 적이 없다. 비유컨대 필자의 전외가가 G S그룹 총수家인데, 선친이 항일독립운동을 하면서 만석꾼 처갓집재물을 못 본체 할리가 萬無하다.
前言에 沓600두락을 팔아 백산상회를 통해 독립운동자금과 조석간 8면 발행中外日報신문사 운영을 했다는데 어찌 그 뿐일까 싶다.
시쳇말로 妻家를 작살내는 등 죄밑에 가족은 안절부절 하며 살았다. 철면피하다면 큰 득도 볼 수 있었으련만, 그 애비에 그 새끼라 父傳子傳이란 말을 듣는 다는 게 끔찍하니 멀리했다.
나 역시 지방토호(土豪) 손자로 7대를 내려온 큰 재물을 살수기로 물 뿌리듯 다 소비했다. 어릴 적 우리재산은 촛농(燭膿) 같이 녹아 骨肉相爭 망조로 들었음을 어렴풋이 예감은 했는데, 예측대로 되었을 뿐 더도 덜도 아니다. 財貨란 돌고 도는 法, 잘 돌아가는 것이 시장경제의 순리일진대 물도 한곳에 오래 머물면 썩는 법. 家事도 매마찬가지다.
많은 재산을 훌훌 날려버리고 목숨이라도 부지한 내겐 허튼 야심이나 노욕은 없다. 한 뼘 묘지도 내겐 소용없다. 필요하다면 일신의 장기 (臟器)마저도 기증하겠다. 국가유공자혜택 호국 원 매장도 사양하겠다. 내 자식에겐 이름석자 외엔 줄 것이 없을뿐더러 원치도 않아 부스러기가 남으면 사회에 환원하겠다.
서양에선 초기 로마시대부터 봉사와 기부헌납이라는 신사적 의무(Noblesse oblige)가 자리 잡혔는데, 이는 명예인 동시에 임무로 인식 되었을 뿐만 아니라 자발적 경쟁적으로 이루어 졌다.
포에니전쟁 때 집정관13명이 사망했고 전비조달에 동참 건국 후 500년 동안 원로원 귀족비중이 15분의1로 줄어들 정도로 전쟁에 그들은 앞장섰다는 것을 역사는 증명하고 있다.
전술한바와 같이 필자의 선대 3대가 항일독립운동을 했고, 증조부는 춘궁기에 곳간을 열어 구휼(救恤)하여 북상면사무소 옆엔 면민이 공덕을 칭송한 頌德碑가 있다.
이러하듯 선대의 본을 받은 나는 삶 자체를 선행으로 일관 보통사람이 가진 정직한 믿음으로 나라에 봉사하고 기여하며 최소한의 예의와 염치를 지키며 “대쪽 같은 올곧은 삶, 칼 같은 성격” “똑 소리 나는 성정머리”가 내 人生의 전부라고 자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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