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가는대로> 오복댕기

작성일: 2012-02-23

댕기는 머리를 당긴다는 뜻인 ‘당기’의 변형이 유래된 것 같다. <대동보>엔 우리민족이 단군조부터 머리를 땋았다는 기록이 있고, 중국역사서 <북사>엔 백제의 처녀들은 땋은 머리를 뒤로 늘어뜨렸다고 했으며, 신라 또한 머리를 땋아 비단이나 구슬로 장식한 띠나 끈으로 묶었다고 전해지고, 고구려 벽화에도 땋은 머리 모습이 보인다.
고려시대 중국서적 <고려도경>에서도 여자들은 붉은 띠로 장식을 했으며 남자들은 댕기머리를 했다는 기록이 있어 댕기는 고조선부터 전래한 고유의 머리장식이라는 것을 미루어 생각할 수 있다.
오늘날 현대 사람들의 머리모양(hair mode)은 각양각색 천차만별이 되었다. 시대의 조류에 따라 “비틀즈 머리”라고 장발이 한때 유행 했었다. 그 때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 경찰이 머리칼단속을 위해 경찰관 장비로는 방망이 수갑 외에 가위도 지참 했었다. 그런가 하면 청학동에서 시대를 초월해 울진사람 남사고의 예언서《격암유록(格菴遺錄)》《정감록(鄭鑑錄)》에 釋迦之運三千年 彌勒出世 鄭氏運 삼천년의 理想鄕(utopia)무릉도원의 세상 정도령 운의 시대가 到來할것을 기대한 종교집단의 신비로움이라 할까!
상투와 댕기머리는 옛날풍습규범을 따르며 미륵신앙을 숭상하던 집단이 밖으로 들어나더니 점차로 도인풍모사람들의 머리모양을 따라 묶은 댕기머리가 유행했었다. 이것이 젊은 층과 전위음악을 하는 록밴드와 록가수들의 트레이드마크(trademark)인양 튀는 뮤지션(musician)의 전유물이 된 듯했다. 이렇게 옛 풍습을 고수하려는 것을 비아냥대거나 들추어 배척하려는 것은 아니다.
우리민족의 光明思想은 국조환웅천왕에서 비롯되었다. 6대 단군 代 역사를 예언한 신지발리(神誌發理)는 우리의 국호는 아홉 번 변한다했고, 광명은 밝고 환하다는 뜻으로 桓國·배달·조선·부여·고구려·대진국·고려·조선으로 명칭(國號)이 예언대로9번 바뀌었고, 열 번째 대한민국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그 뜻은 오로지 “밝다”라는 광명사상에 근거하여 祭天(하늘에 제사지냄)과 성황당은 미신이 아니고 上帝(하느님)께 평안과 안녕을 기도하던 세시풍속일 뿐 미신으로 간주하여 꺼리고 피할 일이 아님을 밝히고 싶다.
우리 동리 치내마을에선 재작년 정월 대보름을 기해 미풍양속인 달집태우기를 없앤다는 이유인즉 솔가지를 베어 와서 달집을 지을 인력이 노인들밖에 없으니 부득이 중단 할 판이란 딱한 사정을 하소연하였다.
세시풍속으로 지켜야 할 고유민속놀이를 형편이 딱해도 이어가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큰 돼지 한 마리 잡고 풍물패를 불러 동네를 한번 울릴 것을 당부하였다.
동산위에 둥근달이 모습을 내밀자 동리장이 첫 불을 지르고 풍물패들의 풍악소리지신밟기를 신호로 남녀노소가 춤을 추며 달집주위를 맴돌았다. 저마다 소원성취를 비는 소지종이를 불사르며 한해의 액막이로 풍요와 길운을 달님께 절하며 기원하는 광경이 이채로웠다.
금년은 미처 몰라 당일에야 취소함을 알아 아차 싶었다. 뒷동산에 키 큰 장대를 베어와 솔가지로 엮어서 크레인장비 힘을 빌려서 짖고 적은 예산으로도 행사를 잘 치를 수 있었으련만, 고령화란 이유 때문에 미풍양속 세시풍속을 기피하는 것이 못내 섭섭했다. 바라건대 세시풍속 민속놀이 행사를 官주도하에 명맥을 이어 갔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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