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四宜齋

작성일: 2012-03-15

유현선비가 마땅히 지켜야할 네 가지 덕목이 있나니 맑은 생각, 엄숙한 용모, 믿음직한 말씨, 과묵한 행동, 묵직해야 하는 행동을 들어 사의재(四宜齋) 라 하니 이 덕목은 오늘날에도 변함없으리라!

무정(茂亭)정만조(鄭萬朝1858-1936)는 한말당시 주도세력인 여흥 민씨(민비)일파와 대립타가 12년간 진도에서 유배생활을 겪게 되었다.
1985년 명성황후 시해사건에 관련됐다는 이완용 등의 모함으로 1896년 4월 고종의 어명으로 우낙선과 함께 유(流)15년형에 처해져 진도 유배지와 인연을 갖게 되었다.

1907년 사면되어 규장각 부재학이 되었고 현종과 철종 때 국조보감 조선사 편수회원 1926년 경성제국대학 강사 1929년 경학원의 대제학 명륜학원 총재 <고종실록> <순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무정 정만조는 의신면 사천리 소치 허련의 운림산방 마지막 작업실에서 방 한 칸을 빌어 유생들을 가르치다 일본서 대학을 마치고 돌아온 안국선과 손을 잡고는 서당을 광신학교(光新學校)로 개명하곤 자신이 교장이 되었다.

무정이 글방을 열었을 때 제자로 찾아온 유생 중 여덟 살 된 허백련의 재능을 알아보곤 화가로서 성공을 하는데 후견인이 되어 주기도 했다. 허백련이 열다섯살이 되자 논어의 한 구절을 인용 “굳세고 튼튼하며 기운과 성질이 단단하고 과감한 것 생김새가 질박하고 표정을 꾸미지 않으며 말씨를 더듬는 듯 느린 것은 仁에 가깝다”는 의미에서 의(毅)자를 따서 의재(毅齋)라는 호를 내려주었다.

목포 유산정 상량문에 유달산 명칭은 놋쇠 유자를 쓰는 유달산(鍮達山)을 유학의 창달을 의미하는 선비유자의 유달산(儒達山)으로 바꾸도록 했다. 개항장이던 목포에 유학정통의 맥을 심어주고 무정은 유달산 자락의 목포시사(木浦詩社)가 발전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기도 했다.
다산이 제자 山石황상의에게 전하는 말에 내게는 병통이 있다. 둔하고 꽉 막혔고 미욱하다.

공부하는 자들이 갖고 있는 세 가지 병통은 ▷기억력이 뛰어난 병통은 공부를 소홀히 하는 폐단을 낳으며 ▷글재주가 좋은 병통은 허황한데 흐르는 폐단을 낳으며 ▷이해력 빠른 병통은 거칠게 흐르는 폐단을 낳으며 ▷둔하지만 공부에 파고드는 사람은 식견이 넓어지고 ▷막혔지만 잘 뚫는 사람은 흐름이 거세지며 ▷미욱하지만 잘 닦는 사람은 빛이 난다했다.
파고드는 방법은 무엇이냐 근면함이다. 닦는 방법은 무엇이냐 근면함이다. 뚫는 방법은 무엇이냐 근면함이다.

老子는 근면함을 왕칙직(枉則直) 이라고 “몸을 구부리는 자 벌레는 장차 곧게 펴려함이니” 무슨 일이든지 성공하려면 노력이 있어야 한다. 자벌레에 딸린 어린나방은 가늘고 길며, 기어갈 때는 마치 손 뼘으로 길이를 재는 모양으로 꼬리를 대가리 쪽에 오그려 붙이고 몸을 앞으로 펴면서나가는 것은 즉 구부리면 온전해지고 휘면 펴지게 된다는 근면에 관한 一言이다.

“무쇠도 갈면 바늘이 된다.”하듯 고되고 어려운 일이라도 성취하려면 초지일관(初志一貫)노력해야 함을 뜻하고, 옥불탁불성기(玉不琢不成器)라 옥을 쪼지 않으면, 그릇을 이루지 못 한다함은 뜻하는 바를 성취하려면 고생을 겪으면서 끝까지 근면과 노력을 기울려야 한다. 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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