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處士

작성일: 2012-04-05

처사란 초야에 묻혀 출사를 탐탁찮게 여겨서 조선의 士大夫들은 관인(官人)의 길과 處士의 길은 양자들의 이념을 실천하는데 있어 궁극적으로는 하나의 같은 길이었다. 여섯 덕목을 갖춘 사람들 즉 經明行修란 학문이 이루어지고 덕이 높은 자를 일컬음인데, “經明(경학에 밝고) 行秀(행실이 착착하며) 純情(순수하고 착하며) 僅僅 (부지런하고 공손하며). 老成(노련하고 성숙하며). 溫和(온순하고 부드러움)” 의 六曹구비인으로서 덕이 높은 자를 천거 6품의 품계를 내린 성훈, 김범, 한수, 임훈, 이항, 남은경 등 6명을 어명에 따라 이들에게 파격적인 (현감)직 벼슬을 제수하였다.
부언하면 처사는 정치세력에서 물러나 관직에 있지 않은 야인으로 그들은 자연에 묻혀 살면서 자기수양에만 힘을 썼다. 그렇다고 출사를 하여 정치적 야망이야 없었을까만 관직에 나가지 않은 산림처사 나름의 존경받는 시대적 배경을 감안하여 요지부동하였다. 필자의 13대조 갈천 선생도 언양현감 광주목사 벼슬길에 나아갔는가 하면, 나머지 山林處士들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갈천(葛川) 임훈(林薰)선생은 조선조 제13대 명종(明宗1545-67재위)대왕께서 살아생전에 孝行을 높이 사서 정려각(生旌閭)을 내려 표창했는가하면 사후 효간공(孝簡公) 시호(諡號)를 내리시어 고래 썩 보기 드문 일로서 林門외 타성에 귀감이 되었다. 사후 500여년이 흐른 지금도 광주유림측에서는 갈천의 牧民官으로서 치적을 칭송 하는 역사적 대목에 오금을 펴질 못한다.
공자는 위대한 사상가이자 오랜 실천교육을 통해 학습이 지식의 원천임을 강조했다. 공자 왈 “나는 나면서부터 만사에 정통한 사람이 아니다”라 했고, “노인을 편안하게 해주고 벗들은 신의를 갖게 해주고, 젊은이들은 감싸서 보살펴 주고자한다” 하였다.
이 말에서 우리는 공자 인생의 경지가 매우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처사 선비들의 경전《논어》에 공자가“나면서부터 다 안다”고 쓰인 것은 후학의 실수였음을 짐작케 한다. 공자는 神仙과 같은 超人이 아니었으며 더더욱 탄강부터 아는 사람은 아니었다. 감정도 있고 성향도 있고 희로애락도 느끼는 현실주의적 인간이었다.
어떻게 해야 仁에 도달할 수 있는가를 물었다. 공(恭), 관(寬), 신(信), 민(敏), 혜(惠)의 여섯 가지미덕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매사에(恭)공경하는 마음으로 대하면 업신여김을 면할 수 있고, 넓은 도량(寬)으로 일을 처리하면 백성의 지지를 받을 수 있으며, 신실(信)하게 일하면 사람들에게 존중받을 수 있고, 근면하고 민첩(敏)하면 쉽게 성공할 수 있으며, 백성에게 은혜(惠)를 베풀면 신심을 얻을 수 있다는 공자님 말씀만 실천하려고만 해도 국회의원 하기 싫다고 손 사례를 쳐도 절로 되지 않을까 싶다.
천하에 물보다 약한 것이 없다. 그러나 굳세고 강한 것을 꺾는 데는 물보다 강한 것도 없다. 즉, 노자의 사상 上善若水말일세라. 물은 기꺼이 하류에 머물며 그 성품이 유약하지만 아무리 견고한 것도 그에 비 할 수 없다. 따라서 사람이 자기를 보존하고 싶다면 강함을 드러내서 이기려 하지 말아야 한다. 곱사등 될까싶게 <ㄱ자90도>로 조아려 절하다가 일단당선만 되면 강자로 돌변하는 것을 빗대듯 노자는 오직 유약함이 삶에 생기가 있다고 했으며, 물이 아래로 흐르듯이 다툼을 피해야 하고 부드러움을 지키는 최고의 선(善)은 물과 같다고 했다. 六曹구비인에 비유되는 말인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