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이름 모를 어느 젊은이에게
작성일: 2012-05-10
오늘은 6·25전몰 유자녀의 하소연을 들어보라. ‘나이 많은 노인들이 다 죽어야 남북통일이 될 것’이라는 어느 젊은이의 푸념을 지나가는 말로 들었다.
이름 모를 어느 젊은이여!
나는 지금 70세를 넘긴 늙은이다. 6·25전쟁에서 아버지를 나라에 바치고 한 많은 세상을 살아온 나이 많은 사람이다. 아버지의 모습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불상한 늙은이다.
전쟁으로 아버지를 잃고 홀어머니 밑에서 호래자식이란 말을 듣지 않으려고 눈물 속에 살아왔다. 정상적인 교육도 아버지의 사랑도 받지 못한 채 굴러온 어린 시절로 인해 삐뚤어진 성격, 남을 믿지 못하는 배타적인 성격, 잘못된 성장과정과 사랑에 목말랐던 삶, 이 모든 것에 대해 나는 누구를 원망해야 할 것인가?
이름 모를 어느 젊은이여!
우리는 전쟁을 일으킨 공산당과 소위 북의 지도자를 용서할 수 없다. 젊은이의 아버지는 과거 무엇을 하고 살았으며 젊은이는 어떤 환경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는가.
우리세대들이 갈망하는 ‘통일’절규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전 세계가 규탄하는 북한당국이 지금이라도 미사일과 핵무기 개발을 중단하고 북한주민들의 식량문제부터 해결하고 살기 좋은 북한을 만든다면, 한 많은 지난날을 잊고 평화통일의 길로 손잡고 갈 수도 있다.
이름 모를 젊은이여!
아직은 아니다. 그들의 야욕이 살아있는 한, 나이 많은 늙은 노인들이 눈을 감기까지 그들을 경계한다. 진정한 화해의 길로 돌아서기까지 우리는 튼튼한 안보로 대한민국을 지켜야 한다.
이름 모를 젊은이여, 이 목소리에 오늘 귀 기울이지 않을 텐가.
-나라사랑 신문 5월1일 11면 보훈광장 에서-
6·25동란 후 격동기를 겪어보지 않은 전후(戰後)세대들은 조부모 세대가 잿더미 폐허속에서 피나는 노력 끝에 국토재건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룩하였다는 것을 잘 모른다. 요사이 부강해진 나라의 사회복지정책은 최소한의 넉넉한 삶을 꾸려가게하고 있다.
그래서 할아버지 아버지 세대가 기아선상에서 허리띠를 졸라매고 살아온 ‘뼈저린 배고픔’의 고초를 알 수 가없는 것은 접어두고라도 어쩜 그렇게 몰라도 모를까 싶어 야속하다. 요즘 신세대 아이들은 왜, 배가 고팠냐고 물으면서 “배가고프면 라면이라도 삶아 먹을 것이지!”라며 뚱딴지 같은 말을 하고 있다.
지난 일을 새삼 들추어보면 “모당지도자가 60-70세 노인은 선거를하지 않아도 된 다”고 한말을 들은 지가 엇 그제인 것 같다. 고로 찌져지게 가난했던 우리들 어린시절의 아픔을 신세대 정치지도자들조차도 감지하지 못하는 세태이고 보니 “라면이라도 먹지, 노인들은 투표를 안 해도 된 다”는 어법이 그들에게도 성립되었으니 한마디로 정치지도자와 청년 학도들의 세대차 Gap이 큰 점은 제쳐두고라도 근본적으로 통치자들의 사고가 중등학생 정도에도 못 미칠 것 같은 ‘역사 정치철학’의 빈곤에서 오는 政府의 총체적 교육정책부실에서 온 폐해라고 단언하는 바이다. 언어 정책만 해도 수천년 동안 우리나라의 모어는 국어인 단일 언어사회가 21세기 세계화 시대에 걸 맞는 영어공용화를 실시하여 이중언어 국가를 지향해야 한다고 말한 것을 보고 실성하지 않고서야 감히 정치지도자가 이런 言辭를 해도 되나 싶어 졸도 할 지경이었다. 이렇게 나라가 퇴보를하고 속된 지경으로 돌아가고 있음에도 온갖 품상을 다겪고 지혜를 쌓은 노인들이 빨리 죽어야 통일이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