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서평론> 지리산 의병 200명 찾았다.
작성일: 2004-09-06
지금 정가에서는 일제 하 친일 부역한자(친일파)들의 과거청산을 하자, 안된 다로 한창 힘 겨루기를 하고 있다.
여기에 우리나라 최고지성으로 지칭되는 소설가 이문열이 문화일보와의 대담에서 일제 하 36년간의 한일합방은 합법적이었다는 망언을 해 여론의 파고가 드높다.
이러한 와중에도 잔악 무도한 일제치하에서 당시신원공립학교의 초등학생이 항일 동맹휴학을 일으켜, 주동자5명이11일간 구금 옥고를 치렀는가 하면 이에 동조한 전교생과 학부모 면민의 애국심을 기리는 항일동맹휴학 의거 비 제막식이 광복59주기를 기해 신원 면에서 거행되었다.
이러 하듯 지워질 수 없는 아픈 과거사가 명경알 같이 백일하에 드러나고 있다.
지리산일대의 독립운동사를 연구하는 하동 항일독립투쟁사 연구소 소장 정재상(33)은 지리산독립 투쟁사를 편찬하기 위해 자료를 수집하던 중 그 때 왜경의 보고서를 통해 항일 독립 의군(義軍) 200여명의 상세한 기록을 발굴하기도 했다.
확인된 바에 의하면 을사조약 (1905)을 강제체결 당한 후 1906~1910년 경상·전라도 지리산 일대에서 활약한 무장 의병 군으로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를 하다가 전사하거나 체포되어 총살당한 분들이다.
이로 인해 독립운동사에서 밝혀지지 않았던 각 지역의 의병장의 명단과 의병의 규모, 당시의 활동상황, 활동지역, 의병군의 신분, 연령, 봉기의 원인, 사용한 무기의 종류와 복장상태, 전사자 및 체포자 수, 의병군의 격문 내용 등이 구체적으로 기록된 자료이다.
기록에 따르면 경북 영천의 정관직, 정관여 부자는 의병 200여명을 규합하여 항일무장 투쟁을 펼치다가 일본군에 총살 됐으며, 산청의 이차봉·소봉 형제는 지리산 일대에서 의병을 모집해 일본군과 교전하다가 전사 순국했다.
또 전남 광양의 의병대장 황사중 선생은 130여명의 특수의병 부대와 함께 일본군 참모본부를 습격, 큰 타격을 입히고 체포되어 총살당했다.
정 소장은 「하동지역 독립운동사를 연구하다가 지리산일대에서 대규모 항일 무장 투쟁이 전개됐다는 것을 알게됐고 이를 증명할 사료를 찾던 중 이번 자료를 발굴했다」
정 소장은 「1차로 전사 순국한 27명의 공적 서를 만들어 국가보훈처에 독립유공자 서훈신청을 냈고, 나머지 운동가들은 자료를 더 찾아 차후에 신청 할 계획」이다.
이렇게 정 소장이 쌓은 공로에 경의를 표하며 정 소장 같은 이가 있어, 오늘날 나라가 지탱하는 것 같아 그 의로움에 거듭 고개 숙여 감사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