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이완 장군의 기지

작성일: 2012-09-06

우암 송시열 이 재상으로 있을 때였다. 그는 평민 복 차림으로 경기도 장단으로 사찰 차 떠났다. 길을 재촉하고 있었는데 검은 구름이 삽시간에 퍼지더니 갑자기 굵은 빗줄기가 장대같이 퍼붓기 시작했다. 그는 황급히 말을 몰아 길가 작은 주막엘 들려 하나밖에 없는 손님방에 자리를 잡았다. 그가 빗 소리를 들으며 밖을 내다보고 있을 때, 밖이 갑자기 소란스럽더니 무관 한사람이 비를 피해 주막으로 뛰어들어 왔다. 결국 문관송시열과 무관은 한방에 있게 되었다.
우르릉 쾅 밖에는 번개가치고 비바람이 사나웠다. 두 사람은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무료히 앉아있었다. 금세 그칠 비가 아니었다. 한참동안 열없이 앉아있던 두 사람은 먼저 무관이 입을 열었다. 심심한데 장기라도 한번 둬볼까, 예 둬 보시지요. 우암 송시열은 자세를 낮춰 공손하게 대답했다. 두 사람은 장기를 한판 두었다. 아슬아슬하게 진 무관이 송시열에게 말했다. 영감은 감투를 쓴 것 같은데 무슨 벼슬을 하였나, 보릿 섬이라도 좋게 없엔 모양일세 그려, 보리동지(곡식을 바치고 벼슬을 얻은 사람을 놀리는 말) 하였나, 이런 궁벽한 산촌에서 보리동지도 과분하지, 촌것들이 보리쌀을 팔아서 첩지 한 장 받아가지고 면천운동(免賤運動) 하였던 때가 있었기 때문에 나온 말이었다. 송시열 대감은 버릇없는 무관의 말에 괘심하기 짝이 없었으나 시치미를 뚝 떼고는 아주 공손히 대답했다. 뭐 벼슬이야 대수롭겠습니까. 그 음성이 너무 우렁차서 잠시 놀란 무관은 곧 송시열을 더욱 얕잡아 보고 물었다.
이름이 무언 고, 정말이지 오만하고 무례한 물음이었다. 송 대감은 이에 또 한 번 공손하게 대답했다. 예저의 성은 송나라 송자 이옵고 이름은 때시자 뜨거울 열자 송시열이라 하옵니다. 하자 무관은 소리를 지르지는 않았으나 안색이 새파랗게 질리고 말았다.
송시열은 한나라의 정승이요. 우의정 송시열 대감과 장기를 둔 무관은 10년 만에 그것도 요행으로 운이 틔어 벼슬을 얻게 된 일개 안주 병사에 지나지 않았다. 벼슬이 하루아침에 떨어지는가 생각하니 무관은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구시화문(口是禍門)이라 입이 화를 부른다더니, 함부로 입을 놀리다가 이지경이 되었는가 생각하니 입이 재화의 문이라는 말은 자기를 가리키기 위해서 만들어진 고문진담 같았다. 송 대감이 난감해 하는 무관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을 그 때 갑자기 무관의 안색이 변하더니 무관은 다짜고짜 송시열 대감의 따귀를 철석 갈기며 소리쳤다. 이런 놈 봤나, 네놈이 어찌 함부로 우암 송시열 대감 이름을 사칭 하는고? 무엄 토다 우암대감으로 말하자면 문장과 도덕, 식견이 나라를 뒤흔들고 있는 고명한 분인데 네까짓 영감이 송시열 대감이라니 어서 잘못을 뉘우치지 못할까 나 참 별 영감다보겠네. 무관은 말을 끝내기도 전에 퍼뜩 문을 박차고 나가선 뒤돌아보지도 않고 말을 타곤 북으로 달려갔다.
송 대감은 쏟아지는 빗줄기 속으로 사라진 젊은 武人의 기지를 다시 한 번 칭찬하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실로 보기 드문 기지다. 능히 큰 자리 하나 맡을 만한 인물이다. 송 대감은 주막 주인에게 물었다. 아까 그 사람이 누구 인고 ? 주모 왈 그자는 안주병사로 도임해가는 이완이라고 했다. 송 대감은 일을 보고 돌아와 무관을 불러올려 평안병사에 임명했다. 그 기지와 호기에 반해 얻어맞은 얼굴에 손자국이 가시기도 전에 벼슬을 올려주었으니. 李浣 (1602-1674) 은 어영대장 우의정가지 올랐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