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러> 비키니

작성일: 2012-11-01

“고쟁이 옷을 열두 벌 입어도 보일 것은 보인다.”는 속담이 있다. 고쟁이는 속속곳 위에 덧 입는 단속곳으로 벌을 아무리 덧 포개 입고 속살을 가리려 해도 보일 것은 드러나게 돼있다는 옛말일 게다.
비키니의 사전적 의미는 상하가 분리되어 부라쟈와 팬티로 이루어진 해수욕복으로, 속살은 옷에 가려서 겉으로 들어나지 아니하는 부분의 살이라 했다.
비키니는 1946년 처음 공개된 수영복인데 속살의 90%를 드러낸 한 조각의 헝겊으로 요부 (要部)만 가린 차림새에 당시엔 야한 표현이라 탄식을하며 말세로구나!라고 했단다. 그 충격은 당시 비키니 섬에서 있었던 원폭실험에 비유되어 ‘비키니’라는 이름이 붙게 된 유래란다.
그에 앞서 태평양전쟁이 5천여만명의 희생자를 내고 종전되었다. 고작 손바닥만 한 피륙으로 가린 알몸이 전 후 공허감과 무력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임시방편이 되었다니 아이러닉하지 않은가!
비키니는 노출과 숨기기 사이에 엉거주춤 걸친 옷이되 드러난 것도 속살이요. 감추어진 것도 속살이다.
문화나 삶의 한 절정은 이른바 속살을 보일 듯 말듯 감질나게 하는 이중묘수의 몰래카메라와 흡사 짜릿함 같은 것으로써, 알몸이 그대로 드러난 누드는 천박해 뵈고, 다 감추어버리면 흥미를 잃는 게 아닐까?
묘 한 것은 지난여름 핫팬츠 차림에 하의노출이 심하다 못해 다들 벗다시피 한 여인들 활보는 오히려 별로로 보였다. 진작 보일 듯 말듯 속살이 궁금해야 흥미가 더할 터인즉 아예 인도나 이란등지의 이슬람권 여성들이 외출 시 착용하는 얼굴 가리개 차도르복식이 홀딱 벗은 맨살보다는 속을 들쳐보고 싶은 본능적 충동을 더 일으키는가 싶다.
1955년도 마릴린 몬로가 출연한 “칠년만의 외출(The Seven years)”의 지하철통풍구에서 솟구치는 바람에 속치마가 올라가 아랫도리 속살이보인 명장면은 경상도 말로 뽀대가 났다.
MB대통령을 대기업 부서장으로 모시면서 속살을 훔쳐본 바론 참 좋은 대통령감은 아니었다. 동양전통유교사회의 실천덕목 三綱五倫중에서父子有親이 으뜸이다. 아버지와 아들은 천륜인자라 父子사이엔 보편적 기준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하늘이 내린 法道이다.
대통령의 아들이 내곡동 터를 매입하면서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명의를 빌려주고 매입자금의 구체적 조달방법까지 지시받은 것으로 언론은 밝히고 있다.
“부자상은(父子相隱)이라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숨긴다”라는 孔子말씀을 환언하면 부위자은(父爲子隱)이라 아버지는 자식을 위해 숨기고, 자위부은(子爲父隱)이라 자식은 아비위해 숨긴다는 말이다.
일반적인 개념으로 치면 범죄를 고발하는 것이 ‘정직’일 터, 부자지간엔 오히려 죄를 감추어 주는 것이 ‘정직’이란 풀이인즉 아들 이시형씨는 가위孝子일까, 짐짓 不孝子일까 헷갈리어 비키니마저 홀라당 벗겨봐야 할 모양새 같다. 절대다수의 지배자는 다 ‘소리가 없는 사람’을 좋아하게 마련이다. 의견이 명불 허접스러우면 비주류파라 치부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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