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마당> 미움과 분노
작성일: 2012-11-08
어둠 속에서 찻장 모서리 같은 가구의 돌출 부분에 이마를 부딪히면 몹시 아프고 괜히 짜증스럽고 화가 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에 대한 짜증일지언정 결코 어떤 상대에 대한 마음이나 분노의 감정은 아니다.
길을 가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거나 개똥을 밟으면 속은 상하겠지만 그렇다고 속상한 마음이 돌맹이나 개똥, 또는 똥을 싼 개에 대한 미움이나 분노의 감정으로 이어지지는 않는 것이다.
우리는 때로 누군가를 몹시 미워하고 누군가에 의해 격정적인 분통을 터뜨리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나를 위로하거나 충고하는 사람의 말에 이렇게 대답하기도 한다.
‘나도 어쩔 수 없는 걸 어떡해!’ 그리고 그러다가 결국 그런 내 감정을 아예 정당화시켜 버리고 만다. 따라서 내가 절대적인 선이 되고 상대편은 ‘죽일 놈’이 되고 만다.
사람이 어찌 가구 모서리 같은 존재일수야 있겠는가. 또는 사람을 어찌 길거리의 돌맹이나 개똥 같은 것에 비교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사람에 대한 감정 처리야 그렇게 쉽게 정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시 말해서 미움이나 분노의 감정을 쉽게 체험해 버릴 수는 엇을 것이란 말이다.
가구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혔건 돌부리에 걸리거나 개똥을 밟았건 거기에 그런 것이 있었다는 사실이 부당하다는 생각보다는 내가 좀더 주의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앞서기 때문에 쉽게 체험할 수가 있다.
그러나 상대가 사람일 때는 쉽게 감정처리가 되지 못한다.
모든 잘못이 상대에게만 있다는 착각에 쉽게 빠져서 헤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미움과 분노가 부글부글 끓을 수 밖에 없다.
어떤 사람이 살인 강도거나 흉악범이라면 몰라도 사람고 사람의 곤계에서 어찌 나만 절대적인 선이고 진리이며 상대는 무조건 절대적인 선이고 진리이며 상대는 무조건 악이고 부정(不正)일 수 있겠는가.
더구나 어제까지의 다정한 친구요, 형제요, 제자요, 스승이었던 사람이 어떤 계기로 갑자기 그렇게 흉악한 사람으로 전환 될 수 있을까.
나는 아무것도 안 했는데 저쪽만 괜히 저렇게 험악하게 변할 수 있을까.
절대로 그럴 수는 없다. 모두가 상대적이니까 내게도 실수가, 아니 오히려 내 쪽이 더 큰 잘못이 있을 수도 있는데 이 사실을 나는 전혀 모르고 있을 때가 많다. 아니 때로는 일부러 모르는 체 하는지도 모른다.
‘어찌 네 눈에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에 키끌만 보느냐?’고 소리치고 싶을 때 사실 이미 내 눈 속에 크다란 들보가 들어 있음을 나는 까맣게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이러한 서로의 노력 없이는 나와 너 사이에 오직 서로 미움과 분노의 영원한 악순환만 되풀이되고 말뿐이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