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조금 더딤이 좋다
작성일: 2013-01-10
“굼벵이가 담 벽을 뚫는다.” 는 속담은 지극히 느림의 미적표현에 꾸준함의 표상일 게다. “말이 뛰면 굼뜬 소도 간다.”했고, 거북을 탄다, 잡힌 손이 뜬다 함은 느림뱅인 탓에 나의 일에 관해선 부지하세월로 손이 느리기론 소문이 났다.
군 입대 시엔 소위로 가서 소위로 전역했고, 회사에 입사해서 남들은 부장 이사 할 땐 과장급으로 뒤쳐져 느림은 부끄럽지만 이력(履歷)이기에 죄인의 이마에 새긴 火印이거나 경쟁력 없음의 ‘느림보’푯대려니 한다.
“마음은 걸걸해도 왕골자리에 똥 싼다”고 말로는 잘 난체 큰소리치지만, 진작 어쭙잖은 짓만 골라서 해 실속파는 못 된다. 돈 맛 좀 보겠다고 사업을 벌여본즉, 경영이란 오직 이윤추구목적에 혈안이 되어도 경쟁에서 밀리는 판국에 운7기3천운이 따라야 한다는 변명조의 말로 위안을 한다.
신조어‘개점휴업 개점폐업’도 당해보니, 속 골병들어 팍팍한 삶에도 타고난 성정(性情)까진 버릴 수가 없나 보다. 게으른 버릇 탓으로 중학교선 4등, 고등학교선 8등, 대학교 땐 장학생 입학을 해 봤지만 우등상은 못타봤다. 들어갈 때 빤짝 쪼이곤 책을 덮어버리니깐 우등생과는 거리가 멀 수박에, 아마 사회생활도 남을 짓밟고 올라서길 꺼리어, 늘 뒷짐만 지고 바라보는 타입이라선지 늘 뒤지기 마련이었다.
근래 일가친척 선후배 친구가 유명(幽冥)을 달리해 착잡한 심정을 떨쳐버릴 心事로 수영도 해보고, 색소폰 음악원에도 입문해 봤지만 별 위안이 못되었다. 남녀노소불문 쉽게 접근 할 수 있다기에 대들었지만, 한쪽 가슴이 휑하니 뚫린 것 같은 슬픔의 여파가 쉬이 가시지 않음은 웬일일까? 나팔소리 학원장이 젊은 사람 세배는 더 노력해야 한다기에 다섯 배 더한다는 자세건만, 열중하다가도 눈앞에 닥친 골치 아픈 급한 일을 해결해야 하고 따라서 음주 연습이 안 되니깐, 作心三日이 되고 말았다. 학창시절 때 해본 벼락치기, 교활한 커닝(Cunning)을 시도해 봐도 여기선 통하질 않아 더더욱 느림보 거북걸음을 면키 어려운 셈이다.
오지랖이 넓은 난 여러 계층 다양한 부류와 교분 세상을 이롭게 하고 싶은 공덕(公德)쌓기의 끈을 놓지 않았다. 어떤 셈을 하던 내게 당한 나쁜 인연은 별로 없지 싶다. 느려터진 나를 몰랑하게 보곤 별의 별 모리배 타짜 들이 꼬이는 것은 세상 이치 아닐까싶고 알고 속았건, 모르고 속았건 오직 ‘失만 따를 뿐 네겐得이란게 없다’고 단정 했기에 生에 후회는 없다.
허나 그 失이 만년에 +요인이 되어 돌아온 것 같은 놀라움을 근자에 어렴풋이 감지하게 됐다. 財物이면 재물, 地位면 지위 등 더 높은 곳을 지향해 내닫던 知人들이 다 죽었다. 가늘고 길게 산 덕분일까! 맥, 소, 탁주 섞어 3병이 알맞은 건강나이 49세인지라 좀 더디고 느리게 살라는 사주팔자라 느림의美學을 터득한 요즈음이 퍽 행복하다.
자식을 키우며 유아원유치원을 거처 초등2학년이 되어도 한글을 깨치지 못해 된 걱정을 하면서 주변머리 없는 애비를 닮아 설까, 난 왜 이리도 모자랄까란 생각이 미치게 됐다. 일제치하 및 6·25동란을 겪으며 선대6명이 위민위국타가 목숨 바친 내력. “앞장서지 말고 命을 부지하라”는 유훈을 은연중 지킨 탓일까?
아이가 동화책 을 소리 내어 읽기에 너 글자를 다 아냐니까 모른다하곤 이모가 읽어주는 것을 듣고 외웠다기에 바보는 면하겠구나 싶어 자위를 했다. 머리가 터진 아이가 전교 수석을 하였으니 다행 아닌가, “빨리빨리”식 속성교육 보단 조금 뒤쳐져서 가는 약간 더딤이 넓은 마음일진대 “장군의 이마위로 준마가 달릴 수 있고, 재상의 배(復)위로는 배(船)가 다닐 수 있다.”라는 고사에 비유하며 세밑 진솔한 자전적 이야기로 자위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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