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마당 - 박통> “출발점 2013년”
작성일: 2013-01-10
육상에서 몇몇 단거리 달리기의 출발점은 제 각각이다.
곡선 주로(走路)를 달릴 때 바깥쪽 주자의 곡률 반경을 보상해 줘야 공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견 저만치 앞서 있는 듯 해도 실은 확실히 같은 출발점에 서 있는 것이다. 물론 1등과 꼴찌가 반드시 있게 마련이어서 애초의 공평함이 결과적으로 큰 의미없게 느껴지는 건 사실이다.
언제인가, 명문 가문에서 태어난 한 언론사주가 공직 진출을 앞두고, ‘재산이 많은 것이 다른 평범한 눈에는 못마땅하게 보이겠지만 애초에 출발점이 다르다는 것을 이해해 달라’는 취지의 말을 한 것이 기억난다. 그가 하고 싶은 얘기는 필경,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만 하는 엄연한 현실의 존재’ 일테고 다른 사람들이 봤을 때는 ‘왕후장사에 어찌 씨가있나?(王侯將相寧有種乎)라는 생각임에 틀림없다. 나름대로야 일리가 있는 얘기들이지만 어느 하나 딱 맞다고 잘라 말하기 곤란하다.
이른바 ‘잔인한 현실론’은 ‘환경을 인정하는 것이 자신의 능력을 스스로 의심스럽게 할 개연성이 있다’는 점에서 ‘천지 개벽의 희망론’은 ‘왕후장상같이 잘나고 부자인 사람이 왜 늘 소수인가? ’에 대해 시원한 답을 주지 못한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요즈음 들어 예전과 다르게 비교하는 마음이 자꾸 생겨난다. 불안해서인지 이 사람은 왜 이렇게 돈이 많을까? 그 양반은 자리가 좋으니 목에 힘줄만 하겠네 저 친구는 미래가 밝아서 좋겠어 등 나름대로 이리저리 평가를 해댄다. 그리고 ‘저 친구는 운수가 대통했나 보네’라고 위안을 삼다 결국 참지 못하고 ‘자기가 언제부터 잘났다고 저렇게 건방을 떨어?’라고 올가미를 씌워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다한다. 그런데 이렇게 딱 잘라 흑백의 단순논리로 위안을 삼아도 역시 개운치 않다. 곰곰이 생각할 것 없이 열 받은 이유는 뻔하다. 애초에 분명 그들의 출발점이 지금 같지 않았는데 현재는 판이하게 달라져 버린 현실에 대한 원망과 자책인 것이다.
얘기가 겉도는 감이 있다. ‘도가도불상도(道可道不常道)의 뭐라 규정하기 어려운 세상일은 접어두고 다시 트랙(track)으로 돌아가자 달리기의 거리는 애초부터 꼴찌할 선수나 일등할 선수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진다.
물론 신체조건 신발의 성능 등에 따라 영향을 받을 수 있겠지만 기왕 조건이 여의치 못하다면 눈 지그시 감고 오로지 달려야 한다.
이런 점에서 세계 최초의 올림픽 마라톤 2관왕 ‘맨발의 아베베’가 생각난다. 그는 맨발임에도 아무 불만없이(?) 오로지 달리기 자체를 사랑했다. 심지어 나중에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돼서도 두팔로 장애인 대회에 참가, 메달을 목에 걸었다 소감을 묻는 질문에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남과 경쟁해 이기는 것보다 자신의 고통을 이겨내는 것을 언제나 우선으로 생각한다 고통과 괴로움에 지지않고 마지막까지 달려 나는 승리했다.” 이제 곧 새로운 한 해가 다시 시작된다.
지난 해를 열심히 보낸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동시에 새해에도 눈 지그시 감고 열심히 달릴 마음의 끈을 조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