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무량사 천정에 새겨진 前兆
작성일: 2013-03-20
뿌리가 서로 다른데 줄기가 붙어있는 두 그루의 나무를 여지 또는 연목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썩 드문 현상이었기에 당시 중국인들은 이를 길조(吉兆)로 여겼다. 길조는 신의 의지를 나타내는 것으로 이 나무를 통해 하늘의 신이 지상의 통치자에게 전하고자하는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서로 얽혀 있는 나무 연리목은 왕의 덕이 윤택하고, 팔방이 하나의 가족으로 합쳐졌을 때 나타나서다.
무량사의 천장 전조 그림에는 이상적인 정치에 대한 유학자로서의 무량의 생각이 반영되어 있다. 당시 유행한 장수와 불사에 생각과는 관계가 없는 대신 이 그림들은 군주에 대한 일련의 욕구를 보여준다. 즉, 군주는 덕치를 택해 백성을 교화해야 하며, 유학자들을 등용하여 백성을 잘 보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 징조 그림들은 당시 정치행태에 대한 무량의 비판적인 목소리를 담고 있다. 무량이 살았던 환제(桓帝)의 시대에는 천장에 묘사된 이상적인 시대에 나타나는 징조들이 不在했다. 관료들은 부패했고 외척과 환관들이 전횡하는 시기였다. 현자는 숨거나 -무량은 이 길을 선택했다- 아니면 무참히 처형되었다. 백성들은 도탄에 빠져있었고, 전쟁과 자연재해가 끊이질 않았다한다. 당시 시대상황을 「후한서」는 이렇게 전하고 있다.
환재와 영재의 재위기간동안 군주는 태만하고 정치는 혼란스러워, 나라의 운명은 환관들의 손에 좌지우지 했다. 선비들은 이들과 함께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 필부들은 울분을 토하고 처사들은 기탄없이 이들을 비판했다.
천장의 전조들과 이에 대한 설명은 상서로운 징조를 그림으로 그리고 그에 대한 설명을 붙인 『서도瑞圖』라는 책에서 나온 것이다. 이 책은 기원전 1세기에 등장해 기원후1〜 2세기 유학자들 사이에 유행했다고 한다. 무량사의 천장에 새겨진 징조들은 곧 무량의 정치적 생각을 나타낸다. 이 그림들은 특정한 정치 이데올로기를 전달하기 위해 무량에 의해 세심히 선택된 것이었다. 무량은 사당의 천장에 이상적인 시대에 출현하는 징조들을 선택해 새겨 넣음으로써 자신의 정치적 이상과 현실에 대한 비판을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 천장그림에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징조그림의 오른쪽 위 귀퉁이에 새겨진 글 들이다. 예로 뿌리가 다른 두 그루나무의 줄기가 붙을 수 있을까. 흔치 않은 현상이다. 고대 중국인들은 이것을 징조로 생각했다. 징조를 통해 신의 생각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보통사람들은 자연현상이 무슨 의미를 담았는지 알지 못했다. 이것을 해석 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무량과 사관, 그리고 문인들이었다. 이들은 하늘의 뜻을 해석할 수 있는 특권을 갖고 있었던 셈이다.
촉나라가 망한 건 유선이라는 작은 인물에게 나라를 다스리는 큰 일을 맡겼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에서도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자격이나 능력과는 상관없이 가까운 사람만 등용한다거나, 외모만보고 한쪽으로 치우치게 된다. 이리하여 무덕(無德), 무재(無才),무용(無勇)한 인사가 요직에 일부 추천된 경우를 보는데, 이런 무능하고 천박한 인사들이 끼어들어 산통을 깨기 십상이라 좋지 않은 징조는 나쁘다 하겠다.
<임부륙 r2005@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