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쿠바의 연인 체 게바라

작성일: 2013-03-28

인기탤런트가 세계 여러 나라역사 문화를 본 테마기행 쿠바 편이 케이블 TV서 비추어졌다. 텅 빈 아바나의 혁명광장 거대한 벽에 화필로 단번에 내리그은듯한, 아르헨티나 출신의 쿠바국민영웅 체게바라의 멋진 베레모차림초상조각이 슬로비디오로 클로즈 업 되었다. 그의 슬로우 영상이 살아있는 카스트로가 일찍 죽은 체 게바라를 이기지 못 할 거라는 생각에 머문다.
체 게바라는 39세의 약년 나이에 홀연히 사라졌다. 한창 삶의 절정에서 죽었기에 사진마다 빛나는 육체의 순간들만 보여 주나보다.
쿠바국민과 체 게바라와의 애정행각은 50년이 되어도 식을 줄 모른다. 피엘 카스트로는 혁명을 위해 뽑은 단검이면 게바라는 두뇌에 해당한다. 체 게바라는 휴머니스트로서 의사였다. 그것도 25세에 박사가 된 그는 밀림에서 흐린 불빛에 의지해 글과 사상을 전파한 교사였다.
글자를 모르면 왜 총을 잡는지도 이해하지 못한다며 총과 펜을 번갈아 잡았다 한다. 독서광이요 작가이며 또한 시인이자 사상가였으며 화가였었다. 능숙한 소묘 실력으로 여행일지에 스케치를 했으며 글 쓸 시간이 없을 때는 그림으로 일상을 남겼다. 그는 비록 짧지만 외교관이었고 장관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철저한 게릴라 대장이었고 급진적 혁명가였다. 허나 그는 죽었지만 그러나 그는 살아있다. 쿠바의 민족시인 니콜라스 기옌이 1967년 불멸의 체 게바라를 노래했다.
당신은 쓰러졌어도/ 당신의 빛은 꺼진 적이 없습니다. /… 불타는 말을 타고 / 산과 바람, 구름을 헤치고 달려가는 사람 / … 저들이 당신의 몸을 태워도 / 저들은 당신을 우리에게서 떼어 놓을 수가 없습니다. / 체 사령관 / 친구이며 형제인 당신에게서-
열혈청년 체 게바라의 정신적사부인 호세 마르티가 바로 쿠바의 호치민이다.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도 <관타나메라>의 노랫말을 쓴 시인하면 금방 이해하게 된다.
쿠바의 진정한 국부로 추앙받고 있는 이 시인은 쿠바가 어느 한 강대국의 종속국이 되는 것에 대해 격렬히 저항 했을 뿐만 아니라, 소유와 계급과 인종차별에 대해서도 단호히 거부했다. ‘한사람도 불행한 사람을 둔 채 누구도 편히 잘살 권리가 없다’는 게 그의 정신생각이었다.
문인답게 글로써 무기를 삼는다. 『조국 Lapatria』라는 신문을 발행했고, 반 스페인 정치활동으로 거푸 투옥과 추방을 당한다.
“배를 타고 아바를 떠날 때/ 나의 마음 슬퍼 눈물이 흘렀네 / ”
귀에 익은 선율은 낫선 이국사람도 눈물이 핑 돌 것만 같은 분위기의 효과음악! 아바나 광장에 펄럭이는 얼굴 하나. 베레모의 체 게바라. 우수에 젖은 귀공자 티의 조명발이 그의 얼굴 위를 덮는다. 그 아래로 휘갈겨 쓴 그의 글씨.
“혁명은 계속된다. 우리는 승리하리라!” 이른바 ‘쿠바의 유머’ 중 하나 미국 스파이가 쿠바에 들어갔다. 그리고 이렇게 보고서를 쓴다. “이곳엔 가솔린은 없지만 차는 굴러다닌다. 식료품가게에 먹거리는 없지만 모두 저녁식사를 차려낸다. 그들은 돈이 없고 가진 게 없다. 하지만 럼주를 마시거나 춤을 추러간다.
난 이해할 수 없다. 도무지 이해 할 수가 없다.” 토씨하나 바꾸지 못 할 만큼 현실의 단면을 그린 보고서라 하겠다.
r2005@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