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오악사상
작성일: 2013-05-01
우리겨레는 하늘과 산신을 모시어 제사지낸 민족이라 산과는 뗄 레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관계이다. 우린 면전 앞 뒤 사방이 병풍처럼 산이 펼쳐져있어 산을 보지 않고는 살 수 가없다. 산에는 우리들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해주고 마지막 안식처까지도 마련해 주니 우리에겐 산은 숭배의 대상이기도하다. 중국처럼 큰 나라는 13시간을 차로 달려도 지평선만 보이는 넓은 들판이라 옛 우리 동이민족의 터전이었음을 곱씹어 본다.
단군신화를 비 롯 가야 김수로왕의 역사이야기 들이 백두산, 태백산, 구지봉등 산에서 비롯된다. 흔히들 동네뒷동산 논두렁 정기라도 타고나야 인물이 난다는 믿음은 그래서 지금도 여전히 통한다.
하지만 산이라고 해서 다 같은 산은 아니다. 무시로 갈수 있는 뒷산이나 마을에서 신령스럽게 제사를 모시는 당산제 당 골 산등으로 구분이 된다. 산을 다스리는 산신이 가지는 영험에 차이가 있다면 산신께 드리는 山神祭의 등급에도 차별이 있을 수밖에 없다싶다. 한 나라 공동체를 보호하고 있다고 믿어지는 신령스러운 산이 진산(鎭山)이면, 으뜸 되는 산이 오악(五嶽)이다.
오악은 東西南北과 중앙지역을 대표하는 산으로 봄과 가을에 나라에서 山神께 제사를 모시었다. 이런 사상은 옛 중국춘추전국시대에 유행한 오행사상에 따른 것이지만. 신라는 토함산, 지리산, 태백산, 부악(대구)을 오악으로 숭배하였다. 고려 때는 덕적산, 백악, 목멱산(남산)등에 제사를 지내고 남해 금산(錦山)같은 영산(靈山)은 나라에서 벼슬도 한다.
조선시대에는 백두산, 금강산, 묘향산, 지리산, 삼각산등을 오악이라고 해서 특별대우를 하였다. 백두산은 우리나라의 영산뿌리 산으로 영조 땐 망덕산에 백두산을 만들어 제중축이라는 망제를 지냈다. 묘향산은 단군신단과 사명대사의 사당이 있는 곳인데 제단의 이름은 전하지 않는다. 금강산에는 고려 때부터 의관산단(義館山壇)을 만들어 제사를 지냈고 삼각산에는 삼각단산이 있어 신라 때부터 제사를 지냈다한다.
이렇게 오악과 진산에 왕이 보낸 사신이나 지방관이 제사를 주관케 한 까닭은 아마 왕권을 만천하에 과시함도 빼놓을 수없는 통치수단이었음이리라 짐작케 한다. 시대마다 오악의 위치는 달라졌지만 지배하는 영역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곳에 있는 산을 오악으로 정한 것에서 잘 드러난다.
이런 세시풍속을 나라에서 권장하여 고을마다 샅샅이 전해지고 있어 우리 치내마을 산제당만 해도 영험하고 산세가 드세기론 영남제일로 꼽힌다. 매년 정월 대보름날이면 산신께 石泉정한수를 떠놓고 밤새워 소지를 올려 마을의 안녕을 빌던 세시풍속이 있었다. 어느 해 새마을 사업을 한다며 미신타파핑계로 고유풍속이 사라져 서운함을 금할 길 없다. 千萬年을 이어온 미풍양속을 하루아침에 조령모개 식으로 팽개치니 속상하고 上帝(하느님)께 죄지은 듯 언짢은 마음으로 살던 차에 이를 복원키 위해 마을 어르신들과 청년지도자들 간에 수 년 간 정월이면 수의한 결과 마침내 내년부터 산신제를 올리도록 결정한바 성골 산신께 뵈올 면목이 섰다. 이제 마을축제로 산신을 숭배하는 오악사상을 계승하게 되어 천만다행 기쁘기 한량없도다.
<임부륙>